“ 이보게 김장군. 아니 김내관. ”

 

“ 예 유재상...님.... ”

 

“ 이제 자존심 숙이는 법을 좀 배운 모양입니다. ”

 

종국은 허리를 숙이느라 재석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올라가는 목소리만으로도 서양식 안경사이로 저를 업신여길 표정이 상상이 갔다. 시선 끝에 깔끔한 나무 바닥을 딛고 자리를 떠나는 값비싼 신발이 보였다. 종국은 속으로 몇명의 장정을 단칼에 베어내던 살기를 억누르며 홀로 이를 으득이지만 여전히 허리를 펴진 못했다. 전하를 만나러 와서 볼일이 끝났으면 고이 가지.. 꼭 저의 신세를 볼 때마다 한마디를 아끼지 않는 꼴이라니. 하기사 재석은 그가 무관일때부터 태양(왕)을 사이에 둔 양대산맥이라고 불릴 정도의 견제구를 놓던 세력이기에 지금 그의 꼴이 더욱 우스울 것이다.

 

재석이 뒷모습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여전히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다른 내시들 사이에서 종국은 허리를 피며 뻐근한 허리를 스트레칭 하였다. 안 그래도 안 좋은 허리에 좋은 자세일리 없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니 황금으로 된 두 마리의 용이 한데 엉켜 수놓아져있는 자태가 꽤 웅장하다. 왕의 가장 곁에서 모시는 신하라...

 

그의 옆에서 일을 수행하는 내시들은 생각보다 신하다웠다. 일단 누구보다 성실하고 충실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문 하나를 앞에 두고 왕에 대한 예의를 갖춰 허리를 숙이고 있는 지금장면을 봐서도 그말에 반론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자세 하나하나 오래 훈련을 했을 것이고, 배움도 생각보다 깊었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했을 노고라고 할까. 물론 종국에게 왕에 대한 일말의 충성심은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언젠가는 죽이겠다며 큰 뜻을 품고 속을 누를 뿐이다.

 

다만 자세를 지키지 않을 때마다 들어오는 린치가 아팠던건지 아니면 그냥 체념을 한건지 최소한 누가 보는 곳에선 허리를 숙이는 것 정도는 따라주는 상태였다. 이일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걸까... 장군이라고 불리던 때에 그에게 아부를 하느라 눈치를 보던 놈들이 기고만장해져선 시비를 거는 것만 아니면 할만하다...라니 죽은 제 친구들이 웃을 일이다.

 

 

종국은 여전히 두소매를 겹친 체 혼자 얼굴하나 올라온 상태로 옛 생각에 잠겼다. 저를 향해 조아리던 내시들을 거들떠도 안 보던 시절을 회상한다...

 

.

.

.

 

 

 

" 김장군님.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

“ 그래. 알았다. ”

 

나라를 악령들로부터 구한 영웅. 혹은 문무를 겸비한 왕의 뒤를 조종하는 권력자. 사람들은느 그를 그렇게 칭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던 명예며 인기를 등에 지고 뻗뻗하던 허리를 황제 앞에서 조차 제대로 숙일 줄 모르던 시절. 그렇게 단단히 다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지위가 한순간에 무너질 줄은 몰랐다. 아니 사실은 오래전부터 조금씩 준비된 함정이었던 것을 혼자 준비하지 못했던 걸 수도 있지만...

 

종국은 그날을 잊지 못한다. 오랫동안 좋아하던 여인에게 고백을 하기위해 손수 편지를 쓰고 선물을 준비한 날이었다. 그것을 급히 서랍안에 숨기고 자신을 부르는 내시를 따라갔다. 조아린 허리와 작은 보폭으로 걷는 뒤를 답답하게 따라가며 앞장서는 내시를 불쌍하게 생각했던 것도 같다. 특히 창문 밖에서 청소를 하는 노예에게 시선을 주는 그는 ‘차라리 노예가 낫지.. 같은 시종이어도 노예는 인간이기라도 하잖아. 내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뒷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고 태평한 생각이 아닐수 없었다.

 

궁에 들어서자마자 아수라장이었다. 무장을 한 자들에게 목에 칼이 드밀어지고 전혀대비가 없었기에 쉽게 잡혀버렸다. 곧이어 제 편에 섰던 자들이 줄줄이 끌려와 감옥에 갖혔다. 모든 것이 끌어내려지듯 옷이 벗겨진후 매질을 당했다. 그의 집에서 역적모의에 가담한다는 서약과 명단 그리고 위조할 수 없는 제 손도장이 발견된 것이었다. 순간 자고 일어났던 어느 날 이상하게 조금 빨갛던 엄지손가락이 떠올랐으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 외에도 자잘하지만 나오는 증거가 제법 많았다. 온몸이 욱씬거리던 감각보다 속 깊은 배신감 이 더 컸다. 그 배신감이 저를 등졌을 측근에 대한 것인지 믿어주지 않는 황제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러면서도 오해를 풀 수 있는 일말의 희망 또한 갖고 있었다.

 

“ ....전하... 어째서 신의 답을 믿어주지 않으십니까... ”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서 고문으로 피딱지가 진 살결에 쓸리는 밧줄의 감각이 시렸다. 하얀 죄수복과 짙은 피부가 대조되어 보일만도 한데, 사이사이 피가 붙어 흰색이 바래어 몸색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 대역죄인 김종국은 들어라. 그대의 답변 하나하나에 저자들의 목숨이 달려있다. ”

 

높은 계단위에 얹혀진 화려한 금의자. 금색 도포를 입고 비뚤게 앉은 세찬은 그 말을 한 직후 그를 올려다보는 병사에게 작은 손짓을 하였다. 돌연 짧은 단말마가 들렸다. 또다시 종국의 앞에서 10년을 함께해왔던 충성스러운 친우며 동생이 피를 뿜으며 고꾸라졌다. 그 모습에 동공이 흔들리는 그가 성급하게 무릎으로 한발자국 기어왔다. 종국은 며칠간 물도 음식도 먹지못한 목에서 피가 날 것 같았으나 거칠어진 음성으로 최대한 크게 고했다.

 

“ 전하! 제발! 모든 것을 실토하겟습니다. 저자들은 관계가 없습니다!

차라리 미천한 저만을 벌해주십시오. 죽음도 받들겠습니다 전하! ”

 

“ 그래 말해보거라. ”

 

“ 그게... 그... ”

 

하지만 막상 지어내려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럴싸한 거짓말이 생각나지 않았다기 보단 말 한마디에 조금이라도 남은 신뢰 한조각이 깨지고 정말 그가 자신을 싫어하게 될 것이 무서웠다. 이꼴이 됐는데..? 어째서... ? 틈사이로 스며드는 흥건한 피. 6명의 시체가 널부러진 끔찍한 시야를 둘러보던 종국이 멈춰선 사이 또다시 한명이 쓰러졌다.

어긋난 감정을 되맞추기 위해 입술을 꽉 물곤 분노를 되새김질하였다. 이윽고 장군은 옆에 있던 마지막 친우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것을 담은 시선 교환이었다. 무심코 깊은 한숨 끝에 피식 웃었다. 어떤 거짓말을 고하든 이미 이 상황은 끝난 것임을 문득 깨달알았기에. 이내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울먹이는 것 같기도 한 미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 하아... 세찬아... 스스로 왕의 태생인지도 모르던, 계모를 피해 버려져 저잣거리에서 장사가문의 시종노릇이나 하고 있던 네 녀석을 우연히 알아채 궁으로 다시 데려온 게 누구였냐. 권력조차 없던 허수아비를 3황제를 뒤로하고 왕의 자리에 앉힌 게 누군지 잊었더냐. 내가 너를 치려면 진작에 없앨 수 있었다.”

 

두 팔이 묶여있음에도 종국은 뻗뻗히 허리를 펴고 무엇하나 꿀리지 않는 눈으로 세찬을 쳐다보았다. 세찬은 그것이 싫었다. 조금의 존경도 없는, 자신을 밑으로 보는 듯한 눈빛을 평생을 보아왔다. 가장 싫은 것은 거기에 간이 쫄리는 자신이었다.

 

“ 그래. 알고 있죠.... ”

 

지금도 세찬은 한참을 위에서 죄인을 내려다봄에도 혼잣말을 하듯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불현듯 뒤늦게 정신을 차린 뒤 고성방가하듯 말한다.

 

“ 그게 다 ~ 장군. 당신의 이익을 위한 것임도 안다~! 그래서. 꼭두각시같던 그 어린황제가 몸집을 불리는 게 무서웠더냐? 드디어 속내를 드러내는구나. ”

 

종국은 또다시 콧방귀로 응수하였다.

 

“ 그래.. 한나라의 황제가 결국 그깟 종이쪼가리 한 장에 속아서 네놈을 지키던 간성지재(干城之材)에 칼을 꽂는구나. 네놈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배운 것 없는 깡통 같은 머리로 어찌 나라를 다스린다고 하느냐. 이렇게 최측근을 한명씩 베어가다보면 증말 깡통만 남겠구나. ” (*간성지재 : 방패와 성의 구실을 하는 인재)

 

종국은 흐느껴 울 듯이 웃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던 주변의 병사들이 황제의 눈치를 보며 긴장을 할정도로 찬기운이 현장을 뒤덮었다. 어느세 자세를 고친 세찬이 허리를 앞으로 당긴체 출처모를 분노를 쏟아낸다.

 

“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디가 그렇게 잘난건지. 짐에게 고개를 숙이는 방법을 몰랐지 당신은.

네놈말대로다. 형님형님 곧잘 따르던 무기를 팔던 아이가 갑자기 황제가 되니 익숙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곧 깨닫게 해주겠습니다. 신분의 차이란 태어났을때부터 정해졌다는 걸. ”

 

세찬의 눈이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종국은 처음으로 어린 세찬의 얼굴에서 악령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 본래 사형을 쳐해야 맞지만 그동안의 공로와 정을 봐서 목숨만은 살려주는 것이다. 고마운 줄 알거라! ’

 

 

종국은 ‘자존심도 잃고 내시가 되어 황제의 발닦개가 될바엔 목숨을 버리겠다.’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귀양을 간 그의 친우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사족이 묶이고 머리를 하얗게 만들던 처음 느껴본 고통 속에서도 오르락내리락 작은 숨이 붙어있었다. 흐릿한 시야 속, 힘이 하나도 없이 누워있는 자신을 내려다보곤 웃고 있던 황제의 얼굴이 악마와 같았다.

 

‘ 형님에겐 노예보단 내시가 어울리겠습니다. 형님은 이제 내 것이니 그 목숨또한 제 것입니다.

제것을 함부로 한다면 당신의 친우가 그 죄를 대신 받을 거에요. ’

 

둘만의 은어인 것처럼 사근사근 속삭이는 목소리는 간만에 어린시절 종국에게 의지하고 종국이 귀여워하던 동생의 것만 같았으나 내용은 전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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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ㄴ맨 내시로 나오는 그편보고 쓴거 맞습니다 ㅋㅋ 

원래도 똥손이었지만 요즘 안쓰다보니 더 똥손이 된듯 ㅋㅋ

Posted by 타스tark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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