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그게 ..”

 

 

종국이 내시가 되기 몇 년 전의 일이다. 높은 계단 위에 금으로 장식된 옥좌에 앉은 세찬은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그의 신하의 뒷덜미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허공을 바라본다.

 

 

“ 허락하라. 광장의 증설은 나라의 재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

 

그때 세찬의 뒤에서 까만갑옷으로 무장하고 있는 남자가 대신 입을 열었다.

 

“예. 여기 광장 사용허가신청서를 보내온 자료입니다. ”

 

난간 밑에 허리를 숙인 신하는 옆에 있던 손짓에게 손짓을 하였다. 궁녀는 은쟁반위에 놓인 3개의 두루마리를 조심스럽게 왕의 앞에 가져갔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왕과 그 옆에 있던 장군의 사이였다. 볼살이 통통한 왕은 꿋꿋하게 옆을 지키고있던 성벽같은 남자를 힐끔여본뒤 두루마리 하나를 펼쳐들었다.

 

“흐음.. 어찌해야 하나. ”

 

“ 실례하겠습니다. ”

 

그것을 보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위에서 커다란 손이 세찬의 시야를 가리고 감히 왕이 보고 있던 두루마리를 가져갔다. 상참시간에 일어나기엔 매우 오만한 일이었으나 그곳에 있는 고위관리 누구도 입하나 벙긋하지 못했다. 너도 나도 눈을 힐끗이며 서로 불만을 주고 받을 뿐이었다.

 

“ 정내관은 안됩니다. 사리사욕이 많은 이라... 분명히 뒷공작을 할 것입니다. 나머지는 괜찮습니다. 세금은 10%정도로 하시지요”

 

턱을 괘고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던 세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라.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

 

계단 밑에서 저를 보고 고개를 숙이던 신하가 살풋이 그의 왕을 쳐다보는데, 우러러보는 눈빛보다는 한심하게 보는 눈빛이 비쳤다. 대장군의 손아귀에 있는 허수아비 왕. 백성들과 신하들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세찬도 알고 있었다.

 

‘ 정치를 배운지 제법 지났는데 형님은 나를 못 믿으신단 말인가. 당신은 대체 ... 무슨 의도로 나를 이 자리에 세우셨습니까. ’

 

철그럭철그럭. 계단을 내려가는 종국의 뒷모습의 뚫어져라 쳐다보던 세찬은 의자 끝에 달린 용무늬를 꽉 쥐었다.

 

 

“ 장군. ”

 

종국이 계단을 다 내려오자 아직 남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재석이 조용히 종국을 부른다.

 

 

“ 무슨 일이십니까 ? ”

 

“ 병에 찬 물은 저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 법인데 ”

 

재석은 자신의 차를 티수저로 살살 저으며 말을 이었다.

 

“ ... ”

 

“ 그대의 찻잔은 요즘 들어 크게 울립니다 그려. ”

 

제 할말을 다한 재석은 볼일이 다했다는 듯이 남은 차를 드리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두 개의 빨간 깃발이 펄럭펄럭 흔들린다. 다그닥 다그닥- 왕의 가마를 가운데에 두고 말과 사람이 줄지어 행렬하는 곳에는 먼지가 차오르고 있었다. 혼자 편하게 앉아서 가는데도 엉덩이부터 등까지 뻣뻣해질 정도로 오랜 행차였다.

 

“ 잠시 쉬었다 가자 ”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 선대왕의 성묘를 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에 자신의 고향도 들리고 싶었던 세찬이기에 시간이 더욱 지체되었다. 세찬이 옆에서 동행하던 한 내시에게 말하자 곧 둥둥둥 북이 공기중에 울렸고 나발소리가 하늘을 갈랐다.

언뜻보면 많아 보이지만 아는 사람들이 보기엔 정말 작은 수의 병사들이 자리에서 멈춰섰다. 능행에서 동행하는 병사들은 강한 왕권을 상징이며 강압의 상징이기도 했는데, 역대 왕들중 가장 작은 수의 병사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세찬은 병사를 더 줄여서 대동하고 있었다. 악귀의 등장에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어차피 왕권을 다지지 못하는 형편에 백성들의 편에 선 왕이라는 인식을 얻고자던 신하의 청 때문이었다.

 

 

" 배가 고프구나. “

 

“ 시장하십니까? "

 

이내 초록색 도포로 두손을 가린 종국이 머리를 조아리며 그의 옆에 나섰다. 왕이 된 제 앞에서도 꿋꿋하게 내려다보던 장군이 이제는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세찬이 슬쩍 머리를 쓰다듬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어 피한다.

 

“ 흠... 따라오너라.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고. ”

 

궁녀에게서 간식거리가 담긴 비단 자루를 받아든 세찬이 그것을 종국에게 넘기며 뻣뻣해진 몸을 일으켰다. 둥글게 말려있던 긴 옷자락이 둘둘 내려갔다. 산을 하나 넘는 중이었기에 흙길옆에는 듬직한 소나무들밖에 없었다. 몇 명의 호위무사를 데리고 세찬은 먼저 그 사이를 지나갔다. 하얀신발에 진흙이 묻는 것도, 다리를 한뼘 길게 펴 올라야되는 두꺼운 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들은 그렇게 10분정도 산중을 묵묵히 올랐다.

 

풀너미를 걷어내고 올라간 언덕은 정상이 아닐지언정 제법 높아서 밑에있는 마을의 운치가 한눈에 보였다.

 

“ 기억이 나십니까 제가 살던 마을입니다 ”

 

" .... "

 

그리고 당신과 처음 만난 곳이죠. 추억에 빠진 듯 눈빛이 바뀐 세찬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멀리 선대왕의 묘도 보인다. 아버지라... 키워주신 대장장이가 죽고. 빚쟁이에게 잘못걸려 하루하루가 고통이던 때에 그를 구해준 종국은 두번째 아버지이거나 가족같은 친형과 다름없었다.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작은 오두막도, 친한 형님과 시시덕거리며 떡을 먹던 주막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단 그들만이 그 자리에 없을 뿐이다. 다시 그 자리에 둘이 앉는다해도 이미 어긋나 버린 그들은 흉내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왕이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았던 것이 낫지 않았을까.

 

“ 들렸다 가실겁니까 폐하. ”

 

" 이것이야말로 금의환향 아니겠어요? .... 형님 "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칭에 종국은 떨리는 동공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더욱 두 팔을 엮은 도포안에 숨겼다. 끝까지 저를 믿지않았던 그가... 저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놓고 왜 이제와서 이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형님이라는 그 작은 한마디가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꽃는 듯 했다.

 

“ 형님은 처음 저를 본날부터 저의 혈통을 알고 있었습니까? ”

 

종국은 답을 하지 못했다. 세찬이의 친모는 중전이나 후궁이 아닌 일개 궁녀였으나 선대왕에게는 첫아들이었다. 시들시들 병에 걸린건지 약을 먹은건지 기력이 다해 죽어가던 궁녀는 마지막 순간 호위무사였던 종국의 손을 잡으며 실토했다. ‘제 아들... 황자께서 아직 살아계십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여서 믿을 수 있는 대장장이 집에 맡겼어요. “ 부탁하나만 해도 되겠냐고 종용하던, 눈물조차 매말라버린 눈을 보며 거절을 할 수는 없었다.

 

- 그 아이가 왕이 될 그릇이라면 힘이 되어주고, 그렇지 못할 그릇이라면 뜻하는대로... 인도해주세요

 

종국은 여전히 서서 절을 하듯 예의를 갖춘채로 새까맣게 젖은 눈이 울분을 담고 왕을 쳐다보았다. 지금이라면 진실된 답을 해주지 않을까 ... 고심하던 끝에 묵묵히 닫힌 입을 때었다.

“ 저는 처음부터 폐하와 같이 했었지요...

한가지만 여쭙겟습니다.

폐하께서는 진심으로 제가 ...

아니. 너는 ......... 내가 증말로. 너를 헤치려고 했다고 생각하느냐 ”

 

- 그러다가 깨져버릴까 염려되오....

 

그 옛날 재석이 경고했던 한마디가 이제와 비수로 꽂힌다.

 

세간의 시선이 어떻든 간에 그는 할 일을 했고 약속을 지켰다.. 너를 대신해서 화살받이가 되더라도. 제 몸이 부셔져 버린다고해도 ... 한번 충성을 바친 이상. 그가 왕의 임무를 잘 수행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맹세했다.

 

까막눈인 왕을 대신해 밤을 세서 업무를 보았고, 정치판이라고는 알턱이 없는 왕을 대변해

그 짜증나는 정치판에 올라 가장 앞장서서 밀어부쳤다. 그 과정에서 적들이 많아지는 것도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것이라니. 무슨 짓을 해서든 너를 지키려던 나를 저 멍청이는 자신의 손으로 절벽밑으로 떨어트려 묻어버렸다.

 

 

 

“ 아니요. 알고 있습니다. ”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는지 종국의 표정이 멍하니 풀어져 보였다. 하늘은 어느세 해가 산 뒤로 숨으며 붉은 빛을 띄기 시작할 즘이었다. 햇빛을 등지고 있는 세찬의 얼굴은 검붉게 달아올라 태연하게 웃고있었다.

 

 

그러고 보면 왜 자꾸 제 억울한 누명을 그에게 토로했던 것일까...

내가 너를 죽이든 네가 나를 죽이든. 그 끝을 알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날 목에서 피가 날정도로 외치던 항변은 진심이라고.... 그러니까 사실은... 그것이 누명이란 걸 알면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싹싹비는 황제의 모습을 상상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해도 원통함과 분노는 가시지 않겠지만 그로인해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기를 바랬다.

 

 

“방금 ... 뭐라고 .. ”

 

 

“ 형님은 윤통성은 없을지라도 올곧고 충성스러운 인물이라 직접 반역을 꾀하지는.. 않았겠지요. ”

 

 

하지만 그는 사죄하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충격을 받기는커녕 고개를 끄덕이며 바보같이 웃고 있었다. 매일같이 분노를 끌어올리면서도 네녀석도 누군가의 간계에 빠진 것뿐이라고 ... 세찬이 또한 함정에 빠진 거라고. 왕으로써 증거를 가지고 반역자를 처단하는 일은 사실 당연한 것이라고.... 조금은 마음을 너그러트리려고 노력하던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 그렇다면 ... 왜....... 나를.. 어떻게...... ”

 

“ 그렇지만 장군님은 이미 패왕이지 않았습니까. ”

 

“ 나는 ... ”

 

 

가슴이 두근거리며 죄어왔다.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순진무구하던 동생이 아니었다. 한발자국 다가오는 세찬이와 한발자국 뒤걸음치며 멀어지는 종국. 우지끈- 굴러다니는 나뭇가지 하나가 발에 밟혀 두동강이 났다. 종국은 세찬의 얼굴에 정신이 팔려 발에 닿는것이 무엇인지 쳐다볼 겨를도 없었다. 바지위에 까슬까슬 긁히는 딱딱한것은 분명 나뭇가지였으나 왜인지 모르게 뱀이 그의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 왕의 위는 패왕밖에 없으니 패왕이 맞지요. 형님의 부하들은 제 신하라고 할 수 없었고.

그 지위도 권력도 명예도 제 위에 있었으니 존재자체가 반역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 네놈이..!!!! ”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종국은 앞뒤보지않았다. 정말로 뱀이 발밑에 있다면 짓밟아버릴듯이, 어떠한 브레이크도 없이 밀어서 그를 절벽아래로 떨어트릴 (아니 아마도 같이 떨어질) 기세였다. 미리 왕에게 절대 나서지 말라고 언질을 받은 호위무사들도 이건 위험하다 싶은지 급하게 검을 빼려 하고 있었다.

 

 

" 단 한번도!!!!"

 

돌연 빨간 도포자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세찬이 목청껏 소리쳤다.

우렁찬 목소리가 메아리로 들리는 것 같아 종국도 퍼뜩 놀라 멈춰섰다.

 

 

" 단 한번도 잘못되고 있다고 ... 생각한 적이 ... 없으십니까. ”

 

“ 뭐라.. ”

 

 

종국은 왜 세찬이 오히려 울상인 표정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잃은건 나인데. 대체 왜...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가.

 

 

“ 궁전 밖에서는 백성들이 당신을 치켜세우며. 허수아비 왕을 헌담하는 노래가 유행이었죠. 궁전에서는 당신의 직속 신하란 자들이 왕을 무시하고. 당신이 만든 적들이 나를 공격할 때. 그 넓은 궁전 안에서. 10년동안. 모든 이가 한사람을 천천히 옥죄어갈 때.... 당신은 제 곁에 있으셨습니까?

저는 당신을 ... 그 안에서 만큼은... 단 한 번도 제 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

 

오직 제 잘못이라고 말하는 세찬의 말이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무거워서 다리에 힘을 줄수 없었다. 나라의 질서는 물론이고. 비명을 지르며 죽어간 가엾은 동료들도, 제 말에 따라 왕이 되어버린 순진했던 소년도 지키지 못했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 나는 .. 나는 그저 신하의 도리를... ”

 

“ 그것이 정말 신하의 도리입니까. 한참... 넘어서지 않았습니까. ”

 

 

제 손으로 올린 왕이기에 얕보여서는 안된다는 강박. 태평성대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항상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신하로써는 할 수 없는 짓을 많이 한 것 또한 종국은 잘 알았다. 종국은 세찬이를 좋아했지만 ... 왕으로써 세찬이를 믿지 않았다..

팔을 들다가 옷소매 안에 숨겨놨던 단칼이 품에서 툭 떨어졌다. 아까전에 분노에 휩쌓여 그를 공격하려고 꺼낸 단칼. 당황한 종국은 그것을 들 여력이 없었다. 세찬은 다가와서 손수 단칼을 주워 칼날을 살짝 꺼내보았다. 날이 매섭다. 그것은 대장장이였던 자신이 만들어주었던 것이었다...

 

 

“.. 하아... 검을 들이대는 것만이 반역인 것은 아니더라고요.... 자초하신 일입니다. “

 

 

세찬은 그것을 품에 넣으며 종국을 지나쳐 우거진 나무사이로 내려갔다. 그러던 잠시 고개를 돌려 호위무사 한명에게 말한다.

 

 

“ ...김내관이 조금 힘들어보이니 잠시 쉬다가 오게하거라.. ”

 

이제 해가 산 아래로 완전히 숨어든 숲속에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

---------------------------------------------------------------------------------------------------------

이것도 완결내고 싶은 au인데 어느세월에 완결내냐 ...

그래도 쓰다가 만게 생각나서 마저 올려봐 ㅎㅎ

'☆☆단편 소설 >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찬종국] 조아리다 #2  (1) 2023.12.07
[김종국팬픽] 돌아서서 보면 (하)  (5) 2023.01.24
[김종국팬픽] 돌아서서 보면 (상)  (0) 2023.01.24
[세찬종국] 조아리다  (10) 2021.08.05
(19) 크루즈  (0) 2020.11.17
Posted by 타스tarkkj

“ 세찬아....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돼보겠느냐...”

 

“예...? ”

 

이미 지난날의 미움과 함께 기억너머로 사라진 추억 한줌. 시야엔 의문스운듯 눈이 동그래진 어린 세찬의 얼굴과 그가 가져온 칼을 들어올리는 제 손이 보였다. 정교하게 백호의 무늬가 새겨진 칼집을 엄지손가락 끝으로 쓸어내렸다. 군사들의 표호처럼 웅웅거리는 바람이 제법 세찬 날이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칼집에서 나오자마자 바람에 몸을 맡기던 나뭇잎을 베어냈다.

 

“ 물론 그래도 너는 내 부하겠지만 ”

 

자만인지 농담인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어린동생이 마주치기엔 벅찼을 커다란 뜻을 숨긴 채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바보같고 순진한 아이는 여전히 농담인줄 아는 눈치로 같이 웃었던 것 같다.

“ 형님.. 방금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럼 두 번째잖아요.”

 

" 나 스스로 가장 높은 곳을 자처하진 않는다.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그래도 너에게 머리를 숙이긴 싫어. "

 

" 그게 뭐에요 대체... “

 

여전히 의미를 말해주지도 않고 빼꼼 입술을 내밀었다. “ 가끔 되게 유치하게 구시는 거 알아요?...” 세찬은 질린다는 듯이 그만 놀리라고 손을 휘저었다. 종국의 옆에 있던 시루떡을 대신 먹는 것은 덤이었다. 마침 날카로운 검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칼집에 넣어졌다. 언뜻 복잡한 심정으로 그 명검을 보았던 것 같다.

 

“ 나중에 알게 되겠지.... 그리고 내 이 검으로 너를 죽이게 될 것이다... ”

.

.

.

 

종국은 눈을 떴다. 그는 잠결에 뒤척임도 없이 고히 이불을 덮고 이부자리에 누워있었다. 다만 심장은 조금 중구난방으로 흔들렸다. 꿈이었구나... 옛날의 추억이 왜 갑자기 되감기 되었는지 그리고 실제로 말한 적이 없던 마지막 한마디는 어찌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이윽고 자리에 앉아 한숨을 푹 쉰 그는 자신의 목숨을 여러번 지켜준 백호의 검을 응시하였다. 세찬이 만들어준 그 검으로 정말 그를 죽일 날이 올까.... 제 목숨이든 남은 친구의 목숨이든 뭐든 사무친 배신감은 점점 더 지독해졌고, 지금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그 뜨거운 심장에 칼을 꽂아넣고 싶은 마음이야 충분했다. 하지만 버리지 못하는 그 검처럼 그의 발목을 잡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의 정체가 어린아이에게 남은 마지막 한줌의 정이라는 것을 느낄 때엔 웃음이라도 날 것 같았다. 지금에서야 정을 느낄 세가 있던가? 이내 종국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제 모든 것을 빼앗겼다. 평생을 바쳤던 명예와 권력도. 차곡차곡 모아둔 재산과 넉넉히 살만했던 집도, 호형호제하던 친우들도, 심지어 남자로써의 자존심까지 가져갔다. 그런 그에게 이제와서 무슨 좋은 감정이 남았다는 것일까. 남아있다고 해도 그것은 조각조각난 감정의 부스러기일 뿐이다. 도리어 종국은 입으려고 꺼내들었던 초록색 비단옷을 내동댕이쳤다. 대신 책상위에 올려진 손가락만한 작은 칼을 잡아챘다.

 

 

.

.

.

닭이 울기도 전인 이른 새벽. 환관한명이 종국의 몸을 구석구석 만지며 위험한 소지품은 없는지 확인하였다. 가슴에서 골반 다리까지 내려오는 손길에 종국을 침을 꿀꺽 삼켰다. 새벽이라 경계가 느슨하다고 해도 너무 성급했나..." 크흠.. ! " 허벅지 안쪽에 붕대로 묶어둔 단칼에 손이 닿을려고 할 때였다. 왕의 기침 소리가 들렸고 두 내시는 급히 하던일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문이 열리자 마자 어디선가 쪼르르 몰려온 궁녀셋이 왕이 입을 군룡포와 세수를 할 도구들을 가지고 들어왔다. 물이 가득 담긴 통을 내려놓은 그녀들이 어느 때와 다름없이 쪼그리고 앉아 왕을 씻기려고 할 때, 흰옷을 입고 있는 세찬이 잠이 덜깬 얼굴로 손을 들었다.

 

“ 오늘은 사냥을 가야하니 옷은... 크흠.. 잠시 물러나 있거라. ”

 

그 와중에 거드름을 피우는 듯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종국은 고개를 숙여 왕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하였다. 뼛속에서부터 들끓는 경멸과 분노를 깊은 숨과 함께 누그러뜨린다. 하지만 그런 노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왕의 입에서 나오는 다음말은 퍽 의외의 것이어서 종국은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다.

 

“ 오늘은 김내관이 대신 해주면 좋겠구려. ”

 

“ 무엇을 ... ”

 

" 세수 말이다. 세수. "

 

종국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왕족은 귀하신 몸이니 직접 세수를 하지 않고 씻는 것까지 하나하나 아랫것들의 손을 받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으나 그것은 후궁과 노예의 일이었다. 그런 허드렛일을 왜 갑자기 자신에게 시킨단 말인가... 물론 어릴적 늦잠을 자던 녀석을 깨워 빨리 일을 나가야한다며 세수를 시킨 일은 몇번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린아이의 투정같은 것은 아닐 것 아닌가. 오히려 지금의 종국은 세찬을 갑자기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였다. 그렇다면 왜? ... 문득 다른 내신들 앞에서 자신에게 하찮은 일을 시키며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불쑥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종국은 이내 목소리에 감정이 들어가는 것을 꾹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

 

“ 그것은 원래... 후궁들의 일이 아니옵니까? ”

 

“ 김내관 자네의 처지를 잊었는가.

설마 자네. 왕을 씻기는 영광스러운 일에 자존심이 상한 것은 아니겠지? ”

 

막 일어난 세찬은 턱을 괘고 다시 잠자리에 누운체 종국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숙여진 고개사이 빨개진 얼굴을 관찰하듯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정말 자신을 제 밑에 놓은 것이 즐거운건지... 한껏 의기양양해져선 장난이 섞인 목소리에 종국은 더욱 머리가 하얗게 타들어갔지만 고개를 더욱 조아리며 명을 받들 수 밖에 없었다.

 

“...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폐하. ”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가간 종국은 두 무릎을 꿇은체 세찬의 앞에 앉았고 왕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길게 내려오는 소매를 걷어 부치고 투명한 물을 한 손안에 고스란히 담은 뒤 다른 손으로는 세찬의 몸을 살짝 숙이게 하였다. 그러나 종국은 그 상태로 굳어버린냥 몇초간 망설였다. ‘야 이녀석아 대체 언제까지 잘거야. ’ ‘종국이형 살살해주세요 살살! ’ 어린 동생의 살집있는 뒷목을 부여잡고 거칠게 씻기던 옛날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세 물방울이 손가락 사이로 뚝뚝 세어나가고 있었다.

 

“ 세수는 .... 오랜만이시지요. ”

 

" .... "

 

종국이 추억을 회상하듯 읊조린 말에 세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옛추억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마지막 애원을 하는 것은 자신일까... 종국은 헛웃음을 치고 둘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속삭였다.

 

“ 네가 정녕 나를 의심했다면 그날 나를 죽였어야했다. ”

 

그리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용안에 물을 튀기며 세수를 시작했다. 부드럽고 섬세하게. 얼굴 구석구석 닦아주는 손길에 살기를 감춘다. 너는 왜 나를 믿지 못했을까... 그날이후 몇 번이고 고민했던 답은 이제 악몽이 되어 그를 짓눌렀다. 세찬은 자신을 의심한 것이 아니다. 돌아온 답은 늘 같았다. 정말 의심을 했더라면, 정녕 그런 중죄라고 생각했더라면, 이토록 가깝게 두진 못했을 것이다. 그저 너를 친동생처럼 챙기고 아끼던 내가, 너에겐 한낱 눈엣가시였을 뿐이겠지.

------------------------------------------

어떻게 끝내려구 갑자기 사극에 빠져서 쓰고있지 ㅋㅋㅋ

'☆☆단편 소설 >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찬종국] 조아리다 #3  (1) 2023.12.07
[김종국팬픽] 돌아서서 보면 (하)  (5) 2023.01.24
[김종국팬픽] 돌아서서 보면 (상)  (0) 2023.01.24
[세찬종국] 조아리다  (10) 2021.08.05
(19) 크루즈  (0) 2020.11.17
Posted by 타스tarkkj

다음날 일어났을 때 종국은 전혀 비몽사몽 하지 않았다. 말똥한 눈이 깜빡깜빡 천장을 바라보았고 이내 근육으로 다져진 몸을 일으켰다. 어젯밤, 신중히 더 고민 해볼만도 한데 만족스러운 결과에 이번에도 냅다 적어버리고 말았다. 아직 한 장이 남았으니까 여차하면 모두다 리셋할수 있다는 안전띠를 멘듯한 착각 때문이기도 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드라마에서 보던 부잣집 집이었다. 물질적인걸 바란건 아니었는데 ... 돈을 충분히 많았고 그저 그때 커리어가 끊기지 않았으면 했던 아쉬움 이었는데도 눈앞에 보이는 결과는 의미모를 두려움 속에서 웃음이 나게 했다. 옷장만 바뀌어버린 전 소원과는 달리 일단 아주 많이 바뀌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 아 ... 이런..” 

 

침대에 앉아 두리번거리던 종국이 무언가 생각난 듯이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아침에 늘 하던 스트레칭도 까먹은 성급한 몸놀림이었다. 탁 트인 호화로운 공간에는 광수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탁자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대형 스크린과 초고층의 뷰 좋은 시니컬한 인테리어에는 어울리지 않을 나무탁자이긴 했으나, 그 탁자 안에 분명 만년필 케이스를 넣어두었었다. 연이어 비슷한 책상과 서랍 곳곳을 전부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아무것도 안 입은 무릎이 그대로 바닥에 닿자 종국은 자신의 모습을 창문에 비쳐보았다. 

 

그는 이번에는 호텔 가운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운명이 바뀌어서 또 성격이 바뀌기라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저번 옷은 멋지기라도 했지. 집에서 호텔가운을 입는 남자가 나라니 상상한적도 없기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그래도 뒤늦게 조식이 들어왔을 때에 종국은 이곳이 집이 아니라 월세를 받고 빌려주는 호텔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뭐야. 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없네. ” 

 

종이를 찾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없어진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하던 소파나 인형등. 마치 전혀 다른 공간의 존재가 된 듯이 눈에 익은 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엇지만 물건에도 정을 가지던 종국이 보기엔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

.

.

 

***

 

복슬개같은 마이크와 회전하는 카메라가 하늘높이 고개를 드는 런닝맨 촬영현장. 

 

 

종국이 없는 6명의 멤버들이 한명씩 잘 꾸며진 소극장에 들어선다. 와 진짜 예쁘다. 누구 콘서트야? 게스트야? 소민이는 또 무슨 정보를 듣고 이렇게 꾸미고 왔어? 말 많기로 소문난 멤버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빠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의자 위 바구니에 가득 담긴 응원봉을 하나씩 나눠주는 재석. 석진은 이게 어떻게 키는 거냐며 하하에게 물어봤다가 놀림을 당한다. 

 

이윽고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서 피아노 반주가 들려올 때에야 주위는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듯이 조용해졌다. 관객석 앞에 모인 멤버들은 오늘따라 더 높아보이는 무대위를 올려다보았다.

‘ 참.. 오래 됐나봐. ' 

 

노래 반주 끝에 얇은 미성의 목소리가 벽을 타고 울렸다. 라이브가 실감이 나도록 노래는 계속 나오는데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들이 세어나갔다. 

 

 

“ 종국이 아니야? ”

 

“ 와 대박. 런닝맨 미쳤다. ” 

 

재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카메라를 바라보고 리액션을 하였고 세찬이 그걸 받아 추임새를 넣는다. 짧은 탄성을 뒤로하고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면서도 평소보다 더 격양된 목소리가 여전히 홀을 가득 채운다. 

 

‘ 외로워할때도 늘 이별앓고서- 아파할때도 - 네 눈물 닦아줄 - ’ 

 

클라이막스가 다가오자 무대 바닥이 열리면서 주인공이 서서히 얼굴을 비췄다. 

아마 자막으로는 영원한 한남자 따위의 멘트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잘 셋팅된 머리에 코트를 입은 남자는 누구나 인정하는 전설급의 가수였다. 

 

“ 종국아! ” 재석이 소리치자 지효가 노래 좀 듣자며 찰싹 어깨를 때리는 장면이 한켠. 

그렇게 한탬포 쉬고 다같이 한남자가 있어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멋드러지게 차려입은체 씨익- 웃는 종국은 가족처럼 가까웠지만 하루아침에 낯선이들이 된 멤버들을 한명씩 눈에 담았다. 두 손을 꼭 잡고 노래를 감상하는 지효와 소민이나 이상한 춤을 추는 세찬이와 하하. 그냥 열심히 야광봉을 흔드는 석진. 멤버들이 저렇게 대우해주는 걸보니 짜릿한 기분이기도하고 허전하기도 하고... 머릿속이 복잡한 탓에 목소리 끝이 조금 떨리는 것도 같았다. 물론 바이브레이션에 묻혀서 관객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종국은 알 수 밖에 없었다. 감정이 평상시 같지 않다는 것을. 

 

 

“ 종국아! 나알지? 내가 얘 밥도 사주고 막 그랬는데. 진짜 ... 많이 컸다. ” 

“ 형. 커도 너무 크지 않았어요? ”

" 아 저리가요! 형 저 동훈이에요! 형! 김종국 따라잡기 하던 동훈이라고요. ” 

 

여운을 남기는 반주를 끝으로 관객들이 만족할 공연이 막을 내리자, 박수소리와 함께 누가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멤버들이 무대위로 올라왔다. 재석이 반갑게 그를 맞이하려했으나 미처 닿기도 전에 세찬이와 하하가 그를 뒤로 보내며 재빨리 악수를 청한다. 

 

“ 아.. 어..그래..! 자식.. 동훈아. ” 

 

종국은 어영부영 받아주며 말했다. 처음 보는 사람보다도 어색한 반응에 주변에선 웃음보가 터지고 재석이 동훈을 밀치며 들어왔다. 

 

“ 야 이건 널 완전 잊은거다. ” 

 

“ 아니라고! 나 진짜 팬이라고! 이번에 드라마도 잘 봤습니다 형님! ” 

 

하하는 최근 종국이 출연한 드라마의 명장면을 따라하며 어필을 해본다. 종국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멤버들이 국민가수 급으로 성공한 가수 겸 대상까지 받아본 배우를 어떻게 대할지 예측은 쉽게 했었다. 그렇지만 이 분위기에 평상시 하던 것처럼 대하기도 이상하지 않은가. 애초에 존댓말을 해야할지 반말을 해야할지 조차 답을 내리지 못했다. 오기 전에는 분명 ‘ 멤버들은 어색하더라도 제가 더 잘 아니까 먼저 다다가고 친한 척 굴어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신을 어려워하는 얼굴들을 보니 그다지도 몸이 뻣뻣해질 수가 없었다. 

“ 야 잘나가는 스타들오면 친한 척 좀 하지마. 너희들만 같이 방송했냐! 그게 언제적인데”

 

뒤따라 오는 석진이 한소리함에도 뒤를 돌아보는 재석은 부루퉁한 형을 제치고 두 여자출연자들에게 웃으면서 다가갔다. 이내 장난꾸러기 상을 가득 풍기며 입가에 주름이 질정도로 웃는 재석이 다소곳하게 눈치보는 지효와 소민이를 가리켜 보았다. 

 

" 너희들은 왜 이렇게 수줍어해 갑자기. ” 

 

“ 아니 ... 생각보다 잘생기셨어 풍기는 아우라가 남달라요. ”

 

“ 야. 너 때문에 나까지 덩달아 수줍잖아. 아.. 안녕하세요. ” 

 

그래도 종국은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금의환향처럼 대해주는 멤버들을 보는 것은 분명 들뜰 일이니까. 또한 이 천방지축 여자들이 자신에게 이토록 수줍게 반응하는 것이 얼마나 재밌는 일인가. 당장에라도 놀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따라 나온 ‘아예 지효씨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 후에 무슨 말을 할지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던진 지효씨라는 말에 입맛이 조금 썼다. 

같은 멤버도 아닌데 .. 다시.. 다시 쌓아갈 수 있을까 ... 자신이 이 상황에 조금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 그건 그렇고 예능 잘 안 나오시잖아요? ” 

 

베테랑인 멤버들은 어느덧 흥분을 가라앉힌체 카메라에 잘 비출 수 있도록 줄지어서 서 있었다. 게스트를 바라보면서도 몸은 카메라 쪽을 향한다. 한편 재석의 질문에 종국은 다시금 종이 한 장으로 자신의 인생이 확 뒤바뀌었다는 걸 실감했다. 

 

“ 아예... 그런가. 그렇죠. ” 

 

“ 근데 홍보할 것도 없으신데 어쩐일로 오셨어요? ” 

 

동훈이 우상을 보는 듯 반짝반짝한 눈으로 응시했다. 

 

“ 야. 와주면 고마운거지 어쩐일로 왔다니. 넌 저리가 있어! ”

 

“ 와. 이 형은 왜 자꾸 친한 척이야. 내가 더 친했다니까! ” 

 

다른 톱스타들처럼 체면 차리느라 말을 잘못할까봐 멤버들은 게스트가 말한 기회조차 주지않고 티키타카를 이어갔다. 물론 예능 경력이 전무하다 싶이 사라졌으나 그렇다고 기억이 사라진건 아니기에 종국이 끼어들 듯 말했다. 종알종알 오디오를 채우는 멤버들의 목소리에서 처음의 어색함도 잊을정도의 익숙함이 파고 들어왔나보다.

 

“ 아오 증말. 시끄러우니까 둘 다 맨 끝으로 가있어. ”

 

늘 있었던 서로간의 합의한 버럭을 가장한 약간의 장난질이었다. 그러나 10년만에 얼굴을 비치며 오늘 처음 온 게스트가 무턱대고 할 첫마디는 아니었다고 종국은 뒤미처 깨달았다. 

약 3초정도의 정적 후 재석은 수습하려고 애를 썼다. ‘거 봐 친한거 맞잖아.’ 라는 말에는 자신감도 없었고 어색함만이 덕지덕지 묻어나와 한껏 올라갔던 종국의 어깨위로 얹어지듯 하였다. 종국의 어깨가 축 쳐지는 동시에 사람좋은 상냥한 웃음이 베어나왔다. 

 

“ 농담이고요.. 제가 정말 애청자거든요. 다들 이렇게 하길래 한번 해봤는데 ..”

 

오늘따라 무대와 관객석의 거리가 더 멀게 느껴졌다. 멤버들과의 거리 또한 바로 앞에 있음에에도 다른 공간에 있는 것만 같았다. 

 

“ 이야 방금 그게 연기였어요? ” 

 

그제야 표정이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재석의 뒤로 소민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 저 진짜 화나신 줄 알았어요. ” 

 

“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제가 먼저 출연하겠다고 연락했어요 .”

 

“ 헐 감동 .. ” 

 

그 후로 의미없는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종국은 지금의 자신에 대해 기억이 툭툭 끊겨서 나타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답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바뀐 인생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도 강렬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들어가 본 나무위키에는 자신이 바꾸고 싶었던 것처럼 2003년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고 6개월간 공익을 갔다고 적혀있었다. 

 

3사 대상을 탄 3집 앨범이 끝나고 직후에 4집 앨범활동을 계속했고 덕분에 홍보를 할 수 있었던 ‘편지’도 더 일찍 발매된 ‘어제보다 오늘더’와 후속곡으로 바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마저도 원래보다 좋은 성적을 낸 듯 보였다. 그리고 2008년에 나온 6집 음반이 처음 들어보는 노래들로 3곡이 또 대박이 터지는 바람에 거의 모든 설문조사에서 1위를 하는 국민가수 급으로 올라간 모양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바빠서 패밀리가 떴다에 들어가지 못한 종국은 대신 배우 쪽으로 도전하여 2010년 우수상을 탔다. 그 와중에도 운이 좋은건지 모험 같은 도전은 탄탄대로였고 이번 삶에는 배우와 가수로 두 분야의 대상자가 되어있었다. 될놈될이라던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화려해진 이력에 기분이 좋아야할텐데 마음이 길을 헤매는 방랑자처럼 심숭생숭한 이유는 왜일까. 

 

.

.

.

 

 

 

“ 수고하셨습니다 ”

 

" 예 다들 오늘 고마웠어요. "

 

“ 얘들아 오늘 술 한잔 하자. ”

 

“ 어차피 석진이형은 마시지도 않으면서. ” 

 

 

등뒤의 친근했던 멤버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듯이 회식까지 같이 참여하고 싶었으나 그럴수 없었다. 멤버들의 술한잔에는 게스트도 참여할만한 회식이 있고 그게 아닌 자기들끼리의 만남이 있었는데 후자에 가까워보였기 때문이다. 가끔씩 일면없는 게스트가 단지 술자리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친목모임에 끼려고할 때 불편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더 이상의 염치없는 자신은 사양이었다. 

 

터벅터벅 주차장까지 그 짧은 길을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느리게 걸었다. 

 

 

종국은 스스로 일중독을 염려하면서 자신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던 이유는 명예뒤의 인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20년을 살면서 느낀 바로, 철저하게 자기들끼리의 급이 나뉘고 철지난 스타는 알게 모르게 무시당하는 연예계는 인지도가 만들어내는 계급사회나 다름없었다. 권력이 무너지면 얕보이게 되는 건 한순간이다. 하루아침에 친했던 이들이 등을 돌리기도 한다. 그는 그것이 두려웠다. 종국은 누구보다 사람을 무서워하며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을 좋아하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떨어지면 안 되는 것이다. 흠집이 나면 안된다. 누구보다 열심히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해야 했다. 

 

“ 이거 참나. 왕이 된 기분이군. ”

 

런닝맨 촬영을 마친 종국은 한숨을 푹 쉬면서 머리를 툴툴 털었다. 촬영 하루종일 어찌나 떠받들어주던지 제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럼에도 뭐가 그렇게 심기를 거스르는지 지나가다 신발에 걸리는 작은 돌멩이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려본다. 혼자서 가는 퇴근길은 적적했다. 바뀐 미래에는 갑진이도 곁에 없어서 일부러 얼굴 모르는 매니저는 오늘 쉬라고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실제로 그는 원래도 대단한 커리어였으나 이번생(?)은 가수로 연예인으로 믿기 힘들 정도의 업적을 남겼다. 결은 달랐으나 겸손함이 미덕인 종국이 생각해도 서태지나 조용필 선생님과 견주어도 될 정도였다. (실제로 그런 전설들과 같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혀를 내두르는 그런 위치에 눈 깜짝할 세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데 왜 그 결과가 허무함인지 모를 일이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나무와 건물들 사이로 차를 몰면서도 아까전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멤돌았다. 

 

그중 쉬는 시간 멤버들끼리 나누는 사담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듣다가 신나게 끼어들었던 장면이 한컷있었다. 

- 어? 어떻게 아셨어요? 

 

- 아.. 그게 런닝맨에서 봤나?.. 

 

- 방송에서 우리가 그런 말도 했었어? 

 

머쓱하게 말하던 종국은 아까 전에도 같은 상황에 같은 변명을 한 것을 떠올린 탓에 말끝을 흐렸다. 하루반나절 같이 놀다가 전화번호를 따고 다시 친해지면 되려니하고 쉽게 생각했으나 본래 낯가림이 심한 성격탓인지 꼬인 인연탓인지 쉽지 않았다. 이내 멤버들끼리 다시 즐겁게 떠드는 상황에 종국은 입술을 짓씹었다. 

- 내가 좀 알면 안되냐. 

 

소심하게 뱉어낸 한마디는 단순한 혼잣말이었으나 바로 옆자리에 있던 지효만이 들은 듯이 힐끗 종국을 쳐다보았다. 양반다리를 한 체 제 무릎을 꽉 잡고있던 종국은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을 느끼고는 괜히 고개를 숙였었다. 

본래 같으면 남녀간의 거리도 없는냥 자신의 어깨에 붙어올 지효였으나 둘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듯 하였다. 지효또한 자신만큼 낯을 가리는 성격이니까. 

말도 안되는 심술이었지만 그냥 조금 서운했다. 당연한 반응인 것을 머리는 이해하는데도 지금 자신이 얼마나 이상해보일지 아는데도 아까부터 밀어내는 듯한 행동들에 서운한건 서운한 거 였다. 결국 종국은 가만히 일어나서 자리를 피했었다. 

 

 

“뭐 어차피 직장 동료들인데 뭘 ... 그렇게 까지 소중했냐고 ..”

 

 

오늘따라 어디가 잘못된건지 차에서 나는 삑삑 소리를 들으며 집에 가는 길.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같이 울고 웃었던 기억들이 도장찍힌 듯이 머릿속을 채웠다. 세상에서 지워진 기억들이 자신에게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헤어지면 더 이상 얼굴한번 보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련이 남았던 것이다. 저 혼자 다시 친해지려고 바둥거렸던 상황에 자신은 안중에도 없던 멤버들에게, 제가 없어도 웃고 즐기는 멤버들에게 짜증이 났었다. 

“ 아.. 증말.. 왜 또 여기로 왔지 .. .”

 

머릿속에서 엉켜진 실타레를 풀면서 길을 따라오다보니 종국은 어느세 자신의 집에 가까이 와버렸다. 이렇게 화려해도 되나 싶었던 호텔이 아니라 한 달 전에 살던 제가 가진 부에 비해 검소했던 그 아파트였다. 

 

넉넉한 갓길에 주차를 한뒤 종국은 눈에 익은 풍경을 조용히 눈에 담았다. 그리고 쌀쌀맞도록 찬 바람이 제몸을 가득 안기도 전에 도망가는 것을 느끼며 조금 걸었다. 두 손을 꼭 잡고있는 연인들도 삼삼오오 모여다니는 사람들도 피해서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벤치에 앉아본다. 근처 축구장에서 동네 조기축구회원들이 경기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종국은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전화번호부에는 모르는 이름들이 가득했고, 있어야 이름들은 빠져있었다. 기억에 없는 인연은 모양만 맛있어보이는 속은 빈 과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흠칫. 빠르게 넘기던 목록이 어느 이름 하나에 멈춰섰다. 마스크에 막혀 다시 먹히는 한숨을 푹 내쉰 종국은 전화를 걸고 가만히 기다렸다. 

 

-어... 종국...이니? 

 

“ 모해? ” 

 

- 나? 어... 집에서 애들보지. 근데 네가 무슨 일로 전화를 다했냐. 

 

“ 야 차태발. 오랜만에 술 한잔 할래? ” 

 

- 나랑..?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커다란 뱀 한마리가 등을 쓸어 목을 감싸는 것 같은 두려운 기시감으로 느껴졌다. 

“ 아 ... ”

 

그때 태현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싸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스쳐지나갔다. 무슨 일 때문에 싸웠는지 조차 기억이 안 나는데 20대 초반부터 의지해왔던 절친과의 관계가 단절되어있음은 알 수 있었다. 항상 허허실실한 태현이가 그토록 정색하며 배려없는 너한테 질린다고 말하는 기억은 처음보는 장면이었기에 종국은 잠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심장이 쿵쿵쿵 큰소리를 내며 뛰는 게 느껴졌다. 

 

“ 아... 미안하다... ” 

 

 

잊고 있었다고 하기엔 그 또한 무례했기에 종국이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종국은 답이 없는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끊지는 못했다. 생각이 많은 것은 태현도 마찬가지인 듯 잠시동안 짧은 추임새만 들렸다. 

 

“ 어.. 저기 종국아 너랑은.... ” 

 

종국은 왠지 울컥해지는 마음에 태현의 뒷말을 끊었다. 철벽치고 차가운 말은 더 이상 듣고싶지 않았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쌀쌀맞은 태도를 한번에 몰아받기에 오늘 이만하면 충분했다. 위로받고 싶고 안도하고 싶어서 건 전화에서 상처를 받는 것이 더더욱 서러웠다. 이 남자에게 인연이란 그토록 소중한 것이었고 ... 태현은 그중에서도 가장 믿었던 친구였다. 

 

 

“ 아니야... 끊을게. ” 

 

 

오늘 하루종일 폭포처럼 물밀 듯이 밀려오는 환희의 감정이 가슴속을 전혀 채우지 못하고 커다란 구멍안으로 쏟아져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분명 그가 바라는 만큼 성공했는데 ... 그 재석이형이 인정할정도로 성공했는데도 ...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그를 무시하고 등질 사람이 없음에도... 겨우 몇 주 살아본 인생이 외롭기 그지없었다. 

“ 잠깐만! 야 종국아 무슨 일 있었어..? ”

 

한편 체감상 10년만에 연락이 온 절친했던 친구가 절교한 것도 잊고 갑자기 술을 마시자고 한 것도 모자라 흐극거리며 울음을 참는 목소리까지 들리니 태현은 덜컥 걱정이 먼저 들어섰다. 그러나 종국의 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눈가에 눈물만 주렁주렁 달려 똑똑 하나씩 떨어져내렸다. 종국이 겉보기엔 강해보여도 마음여린 구석이 많다는걸 태현만큼 잘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끊겠다는 놈이 아무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울고만 있으니 태현은 답답함에 먼저 용기를 내었다. 

 

“ 야! 나... 사실 계속 후회했어! 너한테 그렇게 말해놓고 나도.. 네가 너무 편해서 배려가 없었으니까. 계속.. 계속 마음한 구석에 걸리는거야. ” 

 

태현에게 노래라도 불러줄때처럼 상체가 점점 낮아지는 종국은 그만히 듣고만있었다. 

 

“ 사실은 나혼자 자격지심에 ...별 것도 아닌일에 민감하게 군걸지도 몰라.

원래도 네가 ... 처음 만났을 때부터 터보로 스타였고. 늘 뭐든지 잘하던 네가 사실 부럽기도 했어. 그래도 분명 고생하던 네가 잘 된게 너무 좋았다. 대상탔을때는 진짜 .. 내친구가.. 우리종국이가 이렇게 노래잘한다고 내가 막 자랑하고 다니고 했잖아. 

 

그런데... 나는 힘들 때인데 너는 배우로도 나보다 잘나가버리니까.. 그때는... 종국이 네가 멀게 느껴지더라. 그게 어쩔수없이 그렇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진짜 벌 것 아니었잖아 그치. 괜히 민감하게 대응하고 말더라고.... 그래서 내가 말이야... 미안해 친구야...”

"아니야 임마... 그... 미안은 무슨...내가 미안하지. " 

 

태현은 서로 진지해진것이 닭살스러운건지, 당황해서 주절주절 한 것이 뒤늦게 부끄러운건지 종이 뒤집듯이 밝은 목소리로 얘기한다.

 

“ 오늘은 내가 바빠서 못 만나는데... 내일 어때? 술마시면서 다~ 풀자 우리. ” 

 

다만 밝게 가장한 목소리 안에 본인도 먹먹해진듯 막힌 목소리가 세어나왔다. 

 

“ 그러니까 뚝해. 그만 울어.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왜 갑자기 울고 그래... ” 

 

응... 종국은 겨우내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어떤 것도 부족함이 없던 삶이었던 것 같다. 인기도 명예도 부족한적이 없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있던 행복한 삶이라고 여러번 되뇌었음에도 작은 호기심에 욕심을 동반했던 것같다. 이자리가 제자리가 아닌듯이 외로움이 병처럼 다가왔다.

 

 

.

.

.

 

 

그 뒤로 종국은 호텔로 가지 않고 친가에 들렸다. 모든 게 변했어도 이곳은 변함이 없었다. 늘 같은 자리의 같은 물건. 조금 낡은 가전기구들과 벽지에서 익숙한 내음이 포근하게 올라왔다. 짧게 파마하신 웃는 상의 어머니가 현관부터 그를 반겼고 늘 무뚝뚝한 얼굴의 아버지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다. 

덩치큰 몸이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뒤뚱뒤뚱 걸어와 저보다 얼굴하나는 작은 키의 어머니를 부둥켜 안았다. 살며시 안던 평소와 달리 머리를 비빌정도로 가득 안아오는 다 큰 아들의 품에 어머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얘가 갑자기 왜이래 ” 

 

“ 아니 오랜만에 보니까 좋아서 그르지 ” 

 

 

밖에 오래있었던 듯이 덩치만 커진 아들의 품에서 차가운 공기가 묵직하게 퍼져 어머니의 세월이 담긴 피부에 스며들었다.

 

“ 어무니.. ” 

 

“ 왜? ”

 

“ 어무니는 내가 ... 아니에요 ”

 

" 왜 말을 하다가 말어 ? 밥은 먹었니? "

 

제가 백수일때도 누구보다도 잘 나갈 때도 당신은 오롯이 그곳에 있어주는 구나. 종국은 윗옷을 벗으며 찬기운까지 벗어내었다. 집에 온다고한지 30분도 채 안되었는데 벌써 대펴진 방에 들어선다. 문지방을 넘는 종국의 시야에 낡은 갈색 소파가 보였다. 이또한 매일 봐왔던 자신의 방. 왠지 모르게 긴 꿈에서 깬 것 같았다 ... 

 

“ ... 돌아왔습니다 ” 

 

소복히 먼지가 쌓인 소파의 한구석에 어느 만년필 케이스가 놓여있었다.

 

 

 

----------------------------------------------------------------------------------------

꾹이가 워낙 욕심이 없는 인물이라 이런이야기는 케붕인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2006년부터 팬이 되었던 내가 제일 아쉬워서 쓴건데 막상쓰다보니 

그 치고올라가던 전성기 때 위기를 얻고도 지금까지 잘해내는 꾹이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ㅋㅋ 

여러모로 지금의 꾹이에 더 만족하게 됨 ㅋㅋ 

'☆☆단편 소설 >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찬종국] 조아리다 #3  (1) 2023.12.07
[세찬종국] 조아리다 #2  (1) 2023.12.07
[김종국팬픽] 돌아서서 보면 (상)  (0) 2023.01.24
[세찬종국] 조아리다  (10) 2021.08.05
(19) 크루즈  (0) 2020.11.17
Posted by 타스tarkkj

*꾹이 데뷔 만일 합작에 냈던  글 입니다 

 

늦은 밤 서늘한 바람이 파카 안으로 살금살금 기어들어오는 서린 날이었다. 저벅저벅. 다리를 다치기라도 한 듯이 절면서 걷는 남자의 그림자. 일을 막 끝낸 종국은 가까운 거리를 굳이 차를 타고 가기 싫었기에 걷기로 했던 선택을 조금 후회했다. 혹시라도 바람을 좀 더 막을 수 있을까 봐 파카를 좀 더 끌어당겨보지만 이미 뼛속까지 찬 기운이 닿아 필요 없는 행위였다. 마스크 안에 높은 코는 어언 빨갛게 무르익었을 것이다.

 

 

그토록 추운 날. 횡단보도 앞 사거리에 못 보던 할머니 한 분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잘 익은 귤이 빨간 바구니 안에 듬뿍 쌓여있는 모습을 보니 참... 맛있게도 생겼다. 파란불이 켜졌으나 종국은 건너지 못하고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덩치 큰 사내가 노인네에게 부는 바람을 막아주듯이 벽처럼 그렇게 서있었다.

 

“만 원어치만 주세요. ”

 

지갑을 꺼낸 종국은 때마침 가죽을 빵빵하게 채운 돈뭉치를 발견했다.

 

 

“ 아니 그냥 여기 있는 거 다 주세요. ”

 

70은 넘으셨을 나이 드신 분이 헝겊을 귀를 감싸 둘러맨 체 추운 날씨를 견디고 있는 걸 보니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종종 노점상의 채소를 잔뜩 사 와서 어머니를 애먹였던 아버지.

 

“ 진짜? 고마워~ 복받을 거야. ”

 

봉투를 주섬주섬 꺼내며 할머니는 차곡차곡 과일들을 넣어주셨다. 혼자 먹기엔 양이 많으나 아는 동생들에게 나눠주면 금방일 것이다. 이상하게도 봉지를 넘겨받으면서 맞닿은 손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에도 오래 신었던 신발이 시려 동동 구르는 종국과 달리 할머님은 차분하게만 보였다.

 

“ 추우신데 들어가서 쉬세요 할머니 ”

 

“ 총감 잠깐만 있어봐. ”

 

살갑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가려는 종국을 늙고 거친 목소리가 불러 세웠다. 조그만 가방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내어 종국이 들고 있던 비닐에 넣어버린다.

 

“선물 받은 건데 가져. 자네같이 착한 총각은 오랜만에 봐. ”

 

“ 아니.. 아니에요 어르신 ”

 

처지가 안쓰러워 배푼 선행에 선물을 받는 것은 염치가 없었다. 종국은 얼른 주워 다시 돌려드리려고 했으나 구부정한 노인은 퉁명하게 말하며 제 할 일을 한다. 

 

“ 혹시 몰라. 행운이 있을지? ” 

 

 

그렇게 받고 어디다가 놔뒀는지 까먹었던 선물을 몇 년후 청소를 하던 중다시 발견한 것은 운명일지도 몰랐다.

***

“ 이게 뭐더라. 누구한테 받았지. 웃기는 게 다 있네. ”

 

 

대청소를 다 끝낸 종국은 테이블 위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있는 잡동사니를 관찰하듯 만지작거렸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케이스를 열어보니 비싸 보이는 만년필이 꽂혀있었고 그 위로 두꺼운 용지 3개가 나불나불 떨어져 내린다.

 

“ 인생을 다시 쓰라고? "

 

고급진 무늬와 ‘인생을 다시 쓰세요’라는 문구는 금색 빛을 자랑했다. 또한 돌려본 뒷장에는 친절하게 사용법까지 설명해 준다.

 

*살면서 후회했던 선택이 있다면 다시 써보세요

*같이 드린 만년필로 쓰셔야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운명의 가지를 다시 타게 되는 것일 뿐, 당신의 과거에 선택할 수 없는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꽤 구체적인 방법에 종국은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재밌는 장난이라면 재밌긴 했으나, 참으로 허무맹랑하고 요술램프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들어줄 거면 통 크게 해줄 것이지 요구 조건도 많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이런 장난 같은 편지를 남겼담. 종국은 그렇게 시답지 않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 남자는 그날따라 심심했다. 살면서 후회한 일을 고민해보라는 교훈적인 의미든지, 단순한 놀림이든지 상관없었다. 책상을 톡톡 두드리던 종국은 머리를 넘기고는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단 1분의 시간을 낭비하는 유흥거리에 부담은 없었다. 

 

-터보때 ... 지금 봐도 부끄럽지 않은 스타일로... 해주세요... 

 

어쩌면 그답지 않은 이소원은 어제 런닝맨 촬영에서 있던 일 때문이다. 요즘 따라 열일하는 작가들은 기어코 기억너머에 보관해둔 레게머리 시절을 tv만한 크기의 사진으로 뽑아왔더랫다. 멤버들이 어찌나 놀리던지 종국은 얼굴이 빨개져서 노발대발하였고. 그 반응이 웃긴탓에 sns까지 짤이 돈 터였다. 그 사진만 보면 터보시절 자료들을 몽땅 삭제해버리고 싶었던 종국인지라 진심을 다해 그렇게 적었다. 

 

“ 풋.” 

 

불현 듯 나온 헛웃음은 콧방귀에 담겨 공기 중에 흩어졌다. 

 

“이게 뭐냐 증말. 하.. 그만하자. 뭐 볼 거 없나. ” 

 

관찰카메라 때문에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생긴 남자가 중얼거리다가 별 일없이 tv를 켰다. 

소원이 담긴 쪽지가 케이스에 들어가 금방 암전 안에 묻혔다. 

 

.

.

.

 

 

깜빡 잠이 들었나? 커다란 덩치가 찌뿌둥하게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문밖에는 어느새 해가 뜨는지 어두운 장막이 옅어지고 있었다. tv는 여전히 켜진 상태로 런닝맨 재방송이 한참이다. 

 

- 국종이처럼 입고 다니면 얼마나 좋아.

 

- 야 너만 연예인이냐? 

 

-왜 그래요 또 

 

부은 얼굴이 먹이를 찾는 강아지처럼 좌우로 번갈아 돌아가다가, 스피커에서 제 이름이 나오자 그제야 한곳을 바라보았다. 브라운관 너머의 자신은 셔츠에 가디건, 청바지 구두까지 신고 마치 모델처럼 입고 있었다. 예능에서 듣기 힘들다던 재석이형의 칭찬을 들을 만도 했다. 너목보도 아니고 특집도 아닌데 런닝맨에 저렇게 입고 간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다듬어보니 스타일리스트가 챙겨준 옷을 별 말없이 입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저 머리를 박박 긁으며 일어나는 종국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느낀 건 샤워를 다 마친 후 소파에 널린 옷 중 하나를 찾으러 갔을 때였다. 깨끗하게 비워진 소파위에 애꿎은 강아지 인형이라도 들춰보고 멍하니 자리에 섰다. 

 

투벅투벅투벅. 곧이어 후딱 잠이 깬 종국은 강아지 인형을 자연스럽게 들쳐멘체로 즉시 옷방으로 향했다. 설마... 자는 사이에 검은 옷들을 다 갖다 버려야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던 어머니나 팬들이 왔다가기라도 했을까 . 아니면 밤새 요정이 선물이라도 두고 갔을까. 

 

방안에는 기다란 링거에 빼곡히 각양각색의 옷들이 정리되어서 걸려있었다. 분홍색 하늘색 연보라색 청색 등등 이렇게 많이 샀을리가 없는데, 물론 저 구석자리에 안착한 검정색 무리도 있긴 하였다만. 그마저도 평소 즐겨 입었던 츄리닝, 나시, 빈티지 옷들이 아닌 셔츠, 자켓, 후드티 같은 종류의 옷들이었다. 더 희안한 건 보다보니 스펀지에 물감이 스며들듯 이런 스타일도 취향같아 납득이 되는 것이었다. 

 

그중, 절대 제 손으로 사지 않았을 것 같은 댄디한 분홍남방에 저절로 손이 갔다. 그러자 무려 아울렛에 가서 옷을 고르던 제 손이 뇌리에 스쳐지나간다. 비디오 필름처럼 재생되는 것은 분명 자신의 기억이었다. 

 

“ 어? 아. 맞다... 이것도 이것도 ... 내가 산거 맞네 증말... 이거 다. ” 

 

영상처럼 여러 기억이 재구성되어 되감기 되는 기분에 머리가 지끈 아프더니 다시 뇌속이 표백된 마냥 멍해진다. 

 

 

***

 

 

“ 안녕하세요. 오빠. ” 

 

“ 어 그래 수고해. "

 

자신에게 인사하는 스텝들이 잘생긴 게스트라도 본 듯이 발그레해서 수줍게 호의를 표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한참 잘나갈 때야 없던 경험은 아니었다만, 그도 이제 40대 후반이었다. 현관 앞을 나서자 생일도 아닌데 팬들이 보낸 팬레터와 선물들이 잔뜩 쌓여있을 때부터 늘 가던 길인데 몰래 사진을 찍는 사람들까지. 다시 30대 초반의 스타가 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속이 간지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패션의 선두주자라니 해탈함으로 살아온 인생에서 다시없을 별명이라고 종국은 생각했다. 무릇 20년 전에 지금 봐도 부끄럽지 않은 패션이란 종국이 생각한 무난무난한 스타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그 당시엔 혁명적인 스타일로 그의 이미지를 확 바꿔놔버렸다. 더욱이 기대에 부흥해야하는 성격 탓에 30대 40대까지 명목을 이어가야 했음을 초록창에 가득한 ‘패셔니스타’ 라는 기사제목을 보고야 알 수 있었다. 오늘의 종국 또한 가볍게 대충 입고 갔다가( 사실 평소보다는 신경 쓰고 입고 갔다) 못 보던 얼굴의 스타일리스트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는 잔소리만 챙겨듣고 스타일리스트가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은 참이었다. 

 

‘ 그러면 ... 진짜 이루어진거란 말이네 ..? 하아.. ’

 

뭐 현실까지 이런 식으로 영향이 가는 건 원하지 않았지만, 그런 종이쪼가리에 적은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건 몹시 대단히 기껍고 놀랄 방향이었다. 촬영 대기실에 앉아 무려 3명이 스타일리스트에게 머리며 화장이며 케어를 받고 있던 종국은 유튜브를 쭉 내리며 생각했다. 유튜브에 검색해본 그의 터보영상은 썸네일부터가 지금의 아이돌들과 비교해도 튀지도 않지만 모나지도 않은 헤어와 메이크업이었다. 그 시절에 이정도 패션이면 확실히 선두주자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화질은 어떻게 할 수 없었으나 종국은 어릴 적 자신의 외모가 신기하기만 했다. 

 

뭐야 잘생겼네. 

 

 

항상 못생긴 그룹이라고 불리며 쌍커풀 수술을 들먹이고 성형을 권유하던 사장의 목소리가 점차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을 느끼자 종국은 어깨가 으쓱해지는 흐뭇함을 느꼈다. 왜인지 가슴 안에 헬륨가스를 가득채운 듯 기분이 붕 떠있었다. 눈썹화장을 하고 헤어 드라이를 하는 지금 이순간이 귀찮기는커녕 늘 있는 일인 것처럼 편한 느낌도 들어서 스스로가 낯설었다. 

 

“ 형은 형을 진짜 사랑하나봐요. ” 

 

“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 

 

“ 아까부터 자기 얼굴 보면서 실실 웃고 있잖아요? " 

 

먼저 세팅한 뒤 종국의 뒤를 돌아나온 하하가 풀썩 옆에 앉아 자신이 먹고있던 과자를 권했다. 다만 종국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 부럽다 부러워. 20대는 대한민국 대표아이돌에 30대는 국민남친이고, 40대는 꽃중년이라니 나도 그런 인생 한번 살고 싶다. ” 

 

“ 누가? 이번 게스트가? ”

 

" 아이씨 형 말하는 거잖아. 지금 내 옆에서 관리받고있는 김종국! “

 

동훈은 종국의 앞머리를 땅콩을 때리는 척 살짝 건들여본다. 어이없는 미소를 띄운 종국이 그저 거울만 가만히 바라보았다. 

 

 

“ 아이돌은 무슨... 누가 들으면 재수없다해 인마. ” 

 

“ 아이돌이지. 터보 아니에요 터보. 이번에 오는 게스트도 터보때 형 팬이었다는데. ” 

 

“ 그런 건 어디서 듣냐 ” 

 

“ 형이 내 자랑인데 알아야지. 형은 그 얼굴에 조금 뽐내고 다녀도 돼요. ” 

 

소원이 이루어지기전에도 이런 일이 종종 있었기에 소원이라는 거창함에 비해 크게 변한 건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확실히 변한 것 같았다. 

 

“ 그런가. 그래 나정도면 잘생겼지. ” 

 

***

 

 

종국은 콧노래를 부르며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가지런히 벗겨놓았다. 아무도 없는 어둑어둑한 집안에 불이 켜지자마자 종국은 테이블 밑에 넣어뒀던 볼펜 케이스를 먼저 찾았다. 조심스럽게 그것을 책상위에 쟁여둔다. 

 

오늘 하루는 기분이 정말 새로웠다. 27년 연예계 생활을 했으나 이렇게 하루 종일 칭찬과 호를 받은 적은 드물었다... 아니 사실 드문 건 아니었는데 받아들이는 감정의 문이 달랐다. 가스라이팅과 다름없던 터보시절 사장의 기분 나쁜 기억들이 팬들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던 사장님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는 덕분이다. 이제는 남들이 해주는 말이 그저 연예인이니까 편의상 해주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 내일은 무슨 옷을 입고 갈까~ ”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종국이 중얼거렸다. 패션을 고민하는 것이 피곤한 숙제가 아니라 하나의 재미로 느껴졌다. 이윽고 옷을 벗은 짙은 손이 다시 까만 케이스를 향했다. 이내 케이스를 열어 소원종이가 문득 2장만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 정지버튼을 누른 듯이 종국의 콧노래가 뚝 끊겼다. 소원이라니... 장난처럼 적은 한마디가 정말로 이루어졌음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전율이 돌았다. 그의 손안에 당첨될 게 확실한 복권과 같이 폭탄이 들려있는 기분이었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 어쩌면 정말 커다란 기회가 될 수도 절망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종국은 스스로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인생에서 딱 한가지 후회하는 일이 있었다. 커리어 최전성기에 툭 끊기고 온갖 욕을 먹었던 기억이 가슴언저리에 항상 응어리져서 남아있었다. 

 

그리고 고민하던 남자는 팬을 들었다. 

'☆☆단편 소설 >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찬종국] 조아리다 #2  (1) 2023.12.07
[김종국팬픽] 돌아서서 보면 (하)  (5) 2023.01.24
[세찬종국] 조아리다  (10) 2021.08.05
(19) 크루즈  (0) 2020.11.17
[치열종국] 여우는 여우를 알아본다(R)  (2) 2020.08.04
Posted by 타스tarkkj

“ 이보게 김장군. 아니 김내관. ”

 

“ 예 유재상...님.... ”

 

“ 이제 자존심 숙이는 법을 좀 배운 모양입니다. ”

 

종국은 허리를 숙이느라 재석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올라가는 목소리만으로도 서양식 안경사이로 저를 업신여길 표정이 상상이 갔다. 시선 끝에 깔끔한 나무 바닥을 딛고 자리를 떠나는 값비싼 신발이 보였다. 종국은 속으로 몇명의 장정을 단칼에 베어내던 살기를 억누르며 홀로 이를 으득이지만 여전히 허리를 펴진 못했다. 전하를 만나러 와서 볼일이 끝났으면 고이 가지.. 꼭 저의 신세를 볼 때마다 한마디를 아끼지 않는 꼴이라니. 하기사 재석은 그가 무관일때부터 태양(왕)을 사이에 둔 양대산맥이라고 불릴 정도의 견제구를 놓던 세력이기에 지금 그의 꼴이 더욱 우스울 것이다.

 

재석이 뒷모습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여전히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다른 내시들 사이에서 종국은 허리를 피며 뻐근한 허리를 스트레칭 하였다. 안 그래도 안 좋은 허리에 좋은 자세일리 없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니 황금으로 된 두 마리의 용이 한데 엉켜 수놓아져있는 자태가 꽤 웅장하다. 왕의 가장 곁에서 모시는 신하라...

 

그의 옆에서 일을 수행하는 내시들은 생각보다 신하다웠다. 일단 누구보다 성실하고 충실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문 하나를 앞에 두고 왕에 대한 예의를 갖춰 허리를 숙이고 있는 지금장면을 봐서도 그말에 반론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자세 하나하나 오래 훈련을 했을 것이고, 배움도 생각보다 깊었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했을 노고라고 할까. 물론 종국에게 왕에 대한 일말의 충성심은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언젠가는 죽이겠다며 큰 뜻을 품고 속을 누를 뿐이다.

 

다만 자세를 지키지 않을 때마다 들어오는 린치가 아팠던건지 아니면 그냥 체념을 한건지 최소한 누가 보는 곳에선 허리를 숙이는 것 정도는 따라주는 상태였다. 이일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걸까... 장군이라고 불리던 때에 그에게 아부를 하느라 눈치를 보던 놈들이 기고만장해져선 시비를 거는 것만 아니면 할만하다...라니 죽은 제 친구들이 웃을 일이다.

 

 

종국은 여전히 두소매를 겹친 체 혼자 얼굴하나 올라온 상태로 옛 생각에 잠겼다. 저를 향해 조아리던 내시들을 거들떠도 안 보던 시절을 회상한다...

 

.

.

.

 

 

 

" 김장군님.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

“ 그래. 알았다. ”

 

나라를 악령들로부터 구한 영웅. 혹은 문무를 겸비한 왕의 뒤를 조종하는 권력자. 사람들은느 그를 그렇게 칭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던 명예며 인기를 등에 지고 뻗뻗하던 허리를 황제 앞에서 조차 제대로 숙일 줄 모르던 시절. 그렇게 단단히 다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지위가 한순간에 무너질 줄은 몰랐다. 아니 사실은 오래전부터 조금씩 준비된 함정이었던 것을 혼자 준비하지 못했던 걸 수도 있지만...

 

종국은 그날을 잊지 못한다. 오랫동안 좋아하던 여인에게 고백을 하기위해 손수 편지를 쓰고 선물을 준비한 날이었다. 그것을 급히 서랍안에 숨기고 자신을 부르는 내시를 따라갔다. 조아린 허리와 작은 보폭으로 걷는 뒤를 답답하게 따라가며 앞장서는 내시를 불쌍하게 생각했던 것도 같다. 특히 창문 밖에서 청소를 하는 노예에게 시선을 주는 그는 ‘차라리 노예가 낫지.. 같은 시종이어도 노예는 인간이기라도 하잖아. 내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뒷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고 태평한 생각이 아닐수 없었다.

 

궁에 들어서자마자 아수라장이었다. 무장을 한 자들에게 목에 칼이 드밀어지고 전혀대비가 없었기에 쉽게 잡혀버렸다. 곧이어 제 편에 섰던 자들이 줄줄이 끌려와 감옥에 갖혔다. 모든 것이 끌어내려지듯 옷이 벗겨진후 매질을 당했다. 그의 집에서 역적모의에 가담한다는 서약과 명단 그리고 위조할 수 없는 제 손도장이 발견된 것이었다. 순간 자고 일어났던 어느 날 이상하게 조금 빨갛던 엄지손가락이 떠올랐으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 외에도 자잘하지만 나오는 증거가 제법 많았다. 온몸이 욱씬거리던 감각보다 속 깊은 배신감 이 더 컸다. 그 배신감이 저를 등졌을 측근에 대한 것인지 믿어주지 않는 황제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러면서도 오해를 풀 수 있는 일말의 희망 또한 갖고 있었다.

 

“ ....전하... 어째서 신의 답을 믿어주지 않으십니까... ”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서 고문으로 피딱지가 진 살결에 쓸리는 밧줄의 감각이 시렸다. 하얀 죄수복과 짙은 피부가 대조되어 보일만도 한데, 사이사이 피가 붙어 흰색이 바래어 몸색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 대역죄인 김종국은 들어라. 그대의 답변 하나하나에 저자들의 목숨이 달려있다. ”

 

높은 계단위에 얹혀진 화려한 금의자. 금색 도포를 입고 비뚤게 앉은 세찬은 그 말을 한 직후 그를 올려다보는 병사에게 작은 손짓을 하였다. 돌연 짧은 단말마가 들렸다. 또다시 종국의 앞에서 10년을 함께해왔던 충성스러운 친우며 동생이 피를 뿜으며 고꾸라졌다. 그 모습에 동공이 흔들리는 그가 성급하게 무릎으로 한발자국 기어왔다. 종국은 며칠간 물도 음식도 먹지못한 목에서 피가 날 것 같았으나 거칠어진 음성으로 최대한 크게 고했다.

 

“ 전하! 제발! 모든 것을 실토하겟습니다. 저자들은 관계가 없습니다!

차라리 미천한 저만을 벌해주십시오. 죽음도 받들겠습니다 전하! ”

 

“ 그래 말해보거라. ”

 

“ 그게... 그... ”

 

하지만 막상 지어내려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럴싸한 거짓말이 생각나지 않았다기 보단 말 한마디에 조금이라도 남은 신뢰 한조각이 깨지고 정말 그가 자신을 싫어하게 될 것이 무서웠다. 이꼴이 됐는데..? 어째서... ? 틈사이로 스며드는 흥건한 피. 6명의 시체가 널부러진 끔찍한 시야를 둘러보던 종국이 멈춰선 사이 또다시 한명이 쓰러졌다.

어긋난 감정을 되맞추기 위해 입술을 꽉 물곤 분노를 되새김질하였다. 이윽고 장군은 옆에 있던 마지막 친우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것을 담은 시선 교환이었다. 무심코 깊은 한숨 끝에 피식 웃었다. 어떤 거짓말을 고하든 이미 이 상황은 끝난 것임을 문득 깨달알았기에. 이내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울먹이는 것 같기도 한 미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 하아... 세찬아... 스스로 왕의 태생인지도 모르던, 계모를 피해 버려져 저잣거리에서 장사가문의 시종노릇이나 하고 있던 네 녀석을 우연히 알아채 궁으로 다시 데려온 게 누구였냐. 권력조차 없던 허수아비를 3황제를 뒤로하고 왕의 자리에 앉힌 게 누군지 잊었더냐. 내가 너를 치려면 진작에 없앨 수 있었다.”

 

두 팔이 묶여있음에도 종국은 뻗뻗히 허리를 펴고 무엇하나 꿀리지 않는 눈으로 세찬을 쳐다보았다. 세찬은 그것이 싫었다. 조금의 존경도 없는, 자신을 밑으로 보는 듯한 눈빛을 평생을 보아왔다. 가장 싫은 것은 거기에 간이 쫄리는 자신이었다.

 

“ 그래. 알고 있죠.... ”

 

지금도 세찬은 한참을 위에서 죄인을 내려다봄에도 혼잣말을 하듯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불현듯 뒤늦게 정신을 차린 뒤 고성방가하듯 말한다.

 

“ 그게 다 ~ 장군. 당신의 이익을 위한 것임도 안다~! 그래서. 꼭두각시같던 그 어린황제가 몸집을 불리는 게 무서웠더냐? 드디어 속내를 드러내는구나. ”

 

종국은 또다시 콧방귀로 응수하였다.

 

“ 그래.. 한나라의 황제가 결국 그깟 종이쪼가리 한 장에 속아서 네놈을 지키던 간성지재(干城之材)에 칼을 꽂는구나. 네놈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배운 것 없는 깡통 같은 머리로 어찌 나라를 다스린다고 하느냐. 이렇게 최측근을 한명씩 베어가다보면 증말 깡통만 남겠구나. ” (*간성지재 : 방패와 성의 구실을 하는 인재)

 

종국은 흐느껴 울 듯이 웃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던 주변의 병사들이 황제의 눈치를 보며 긴장을 할정도로 찬기운이 현장을 뒤덮었다. 어느세 자세를 고친 세찬이 허리를 앞으로 당긴체 출처모를 분노를 쏟아낸다.

 

“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디가 그렇게 잘난건지. 짐에게 고개를 숙이는 방법을 몰랐지 당신은.

네놈말대로다. 형님형님 곧잘 따르던 무기를 팔던 아이가 갑자기 황제가 되니 익숙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곧 깨닫게 해주겠습니다. 신분의 차이란 태어났을때부터 정해졌다는 걸. ”

 

세찬의 눈이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종국은 처음으로 어린 세찬의 얼굴에서 악령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 본래 사형을 쳐해야 맞지만 그동안의 공로와 정을 봐서 목숨만은 살려주는 것이다. 고마운 줄 알거라! ’

 

 

종국은 ‘자존심도 잃고 내시가 되어 황제의 발닦개가 될바엔 목숨을 버리겠다.’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귀양을 간 그의 친우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사족이 묶이고 머리를 하얗게 만들던 처음 느껴본 고통 속에서도 오르락내리락 작은 숨이 붙어있었다. 흐릿한 시야 속, 힘이 하나도 없이 누워있는 자신을 내려다보곤 웃고 있던 황제의 얼굴이 악마와 같았다.

 

‘ 형님에겐 노예보단 내시가 어울리겠습니다. 형님은 이제 내 것이니 그 목숨또한 제 것입니다.

제것을 함부로 한다면 당신의 친우가 그 죄를 대신 받을 거에요. ’

 

둘만의 은어인 것처럼 사근사근 속삭이는 목소리는 간만에 어린시절 종국에게 의지하고 종국이 귀여워하던 동생의 것만 같았으나 내용은 전혀 아니었다.

-------------------------------------------------

​ㄹㄴ맨 내시로 나오는 그편보고 쓴거 맞습니다 ㅋㅋ 

원래도 똥손이었지만 요즘 안쓰다보니 더 똥손이 된듯 ㅋㅋ

Posted by 타스tarkkj

“ 형 ... ”

 

아름다운 연주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들으며, 자신의 무대를 끝내고 돌아가는 종국은 머뭇거리면서 부르는 하하의 목소리에 고개를 꺽었다. 하하의 옆에는 인형 옷을 입고 그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순간 자신의 팬인가 싶었으나 인형탈을 벗고 씨익웃는 까무잡잡한 아이를 보고 종국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앳되고 곱상해보이는 날카로운 얼굴이, 누가 본다면 자신의 아들로 착각할정도로 빼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중년의 남자는 금방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십년도 더 된 기억너머로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모호함 속에서 어렴풋이 남아있는 한조각이 끼워 맞춰졌다.

 

눈을 반짝이는 아이는 어떠한 통설명도 없이 가슴에 손을 대며 물었다. 분명히 그 조그만 가슴이 대단한 무언가라도 발견한 것처럼 미칠 듯이 뛰었을 것이다. 한번도 제대로 받지못한 부모님의 기대, 성공에 대한 열망, 희망, 어렸을 때부터 마이클잭슨과 같은 외국가수들을 보면서 가졌던 꿈이 웅크린 작은 가슴 안에서 넘실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 저도... 형처럼 될 수 있나요? "

 

질문이었으나 정해져있는 답을 묻는 것 뿐이다.

짧게 깍은 이마가 돋보이는 아이가 누구보다도 뿌듯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한발자국 다고오기에 깔끔한 검정 구두가 뒷걸음질을 쳤다. 어떻게 그 운명의 실을 보는 능력을 잊고 지냈을까. 미래를 보고 미래의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기억은 아주 간혹 나오는 짧은 이벤트였으나 꽤나 강렬했는데도. 평범한 삶에 익숙해졌었다.

 

그리고 그때 그 남자는... 무슨 말을 해줬더라... 이또한 잊을리 없었다.

 

“ 당연하지. ”

 

머리를 쓰다듬는 손, 최대한 다정한 말투와 온화한 분위기에 단순히 꿈이라고 믿을지언정 어느 때보다 큰 안심을 얻었다.

하지만 그때 그 남자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어린 나를 안타까워 했겠구나.

 

.

.

.

 

 

 

 

 

전국투어 콘서트는 벌써 두 번째가 막을 내렸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 뒤 문이 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익숙하게 생긴 한아이가 이미 대기실 안으로 들어와있었다.

 

21살? 22살? 정도 됐으려나 ... 처음 만났을 때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땅만을 보고 있는 청년은 어딘가 지쳐보였다. 밥도 제대로 못먹고 일만하는 기계처럼 돌려진탓일까 볼 살이 들어간 얼굴은 조금 더 샤프해져있었고 덕분에 눈매가 더욱 매서워보였다.

 

잠시동안 누구도 말이 없었다. 세찬 바람만이 창문을 때리기에 덜컹거리는 소리가 방안을 채울 뿐이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누구도, 이 미래마저도 믿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마치 저 자신을 불신하듯이... 누군가는 세상 모든 것에 부정적인 사나운 야수 같다고 했을테지만 종국은 그 아이가 이제막 사회에 발을 디디고 감당하기 버거운 무게에 지레 겁을 먹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 조금 쉬어가도 돼. 너는 열심히 했어. 부담가지지마. ’

 

그 당시 듣고 싶었던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종국은 피멍이든 짙은 팔을 힐끔여보았다. 이 아이는 곧 참혹한 현실에서 도망갈 것이다. 아니 이미 도망간 후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때마저도, 소속사의 갖은 협박속에서 사회는 책임감이 없다며 그를 욕할것이고, 부모님은 다시 일을 하라할 것이며, 같이 도망친 유일한 동료는 그를 버려둘 것이다.

 

결국 나도 그런 어른이 된것일까. 따뜻한 말을 해주려던 그는 입을 다물었다.

해줄 수 없었다. 버텨내야했다 지금의 나를 위해.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눈앞에 있는 아이에겐 모진일이지만 앞으로 더 버텨낼 일이 많았다. 목이 메이는 종국은 입술을 꾹 다물고 강하게 말했다.

 

“ 이제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 무너지지마. ”

 

 

----------------------------------------------------------------

쵸꾹님 썰이랑 스페이드님 만화보고 보고 너무 감명 받아서 나도 모르게 써버림 ㅋ 

Posted by 타스tarkkj

2020. 11. 17. 00:43

(19) 크루즈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드넓은 긍지처럼 하얗고 화려한 날개를 가진 천사와 나쁜마음이라곤 한톨도 없듯 조그만 날개를 가진 악마는 친구사이였다. 천사의 이름은 종국이었고 악마의 이름은 종민이었다. 두사람은 이름도 비슷해서 더욱 쉽게 친해졌다. 

 

 종민은 악마가 된뒤에도 (종민이 악마가 된이유도 천사의 틀은 깼지만 사람을 구하기위한 좋은이유였다한다)자주 종국의 집을 찾아오곤 하였다. 종국은 악마가 천사구역까지 넘어오면 어떡하냐고 화내지만 쫗아내진 못했다. 지금 쫗아내면 잡힐게 뻔하기에. 악마처럼 까맣고 실용적인 것만 있는 집 분위기에 종민은 혀를 내둘렀다. 하얀옷을 입고 놀러온 종민이 오히려 천사같이 보이기도 하였다.  

 

 

 

" 넌 친구도 없냐 ? 왜 자꾸 우리집에 찾아와. "

 

 

" 헤헤. 전 여기가 좋아요 ! 제가 너무 착해서 안놀아준데요. "

 

 

" 그럼 일해 일. 체력 단련을 하든가. "

 

 

" 에이- 악마는 일같은거 없습니다 형. 형 바보아니에요? "

 

 

 

 

 너한테 바보 소리를 듣다니... 종국은 한대 때릴것처럼 몸을 기울이다가 씩웃어보였다. 그래도 직무관계만 있는 천계에서 종민은 유일한 친구였기에 악마답지 않은 그가 싫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원체 보편적인 이야기지만 천사와 악마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종국은 엄청난 전투력으로 악마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천사였고. 공은 날로 높아져 장군급으로 인정받아 작전회의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그날도 커다란원탁에 앉아 지도를 살펴보던 종국은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았다.

 

 몰래 까만 나비한마리가 날아와 종국의 팔에앉았다가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천사는 주위를 살피고 연기를 따라갔고, 복도 끝에 종민이 문틈사이에 숨어있다가 호들갑 떨며 나옴.

 

 

 

" 형형형. 와 형 저 죽는 줄 알았어요. 와- 어떻게 살았지?  형 빨리 안나오시고 뭐하셨어요?  "

 

 

" 야 ..! 너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미쳤냐? 여기가 어딘줄 알고 들어와? '

 

 

 

종국은 목소리를 죽이며 종민을 동상 뒤에 밀어넣고 주위를 살핌.

 

 

 

" 형한테 빌려간 책 못돌려줘가지고..하하... "

 

 

" 야.. 미친 xx가 겨우 그거때문에 여길와? "

 

 

 

종국은 한번더 종민의 엉덩이를 발로차곤 너무 시끄럽게 했다고 자각하며 주위를 또다시 살피겠지.

 

 

 

사실 종국이 종민에게 잘해준 이유는 부러움 때문이었음.

그의 주변에는 신의 군대라고 칭해지는 천사들의 반복된 의무밖에 없었고, 그가맡은 인간들은 악마보다도 더 본질적으로 사악했음. 그래서 천사이면서도 자신이 잃어버린 순수함을 가지고있는 이 악마가 그에겐 불러움이자 무색으로 남아진 마음속의 홀로 파란빛을 내고있는 파랑새 같았다.

 

 

 

결국 종민에게 져줄 수 밖에 없는 종국은 그날 같이 밥까지 먹고 들어감.

 

 

 

천사의 방엔 악마가 들어오지 못하게 경계가 되어있지만 그것을 풀정도로 종국은 경계심이 없었음.

 

 

 

" 와 형 방이 더 좋아졌네요! 토요일에 또 밥 얻어먹으러 와도 돼요? "

 

 

" 안돼 . 바빠. "

 

 

" 여긴 스케줄이 없다고 나와요! . "

 

 

 

종민은 책들사이에 놓여진 탁상달력을 꺼내며 토요일을 가리킴.

 

 

 

" 그래도 전쟁중이잖아 임마. "

 

 

 

종국은 너무 경계를 푼 나머지 제 달력에 써있는 스케줄이 그대로 노출되어있음을 까먹고 배달부를 곳을 찾음. 그 와중에 종민은 종국에게 줄 선물이 있다며 부적하나를 종국의 옷가지 가슴팍에 넣어줌. 꽤나 순진하게 웃으며 종국의 가슴을 툭툭 친다.

 

 

 

“ 행운의.. 부적입니다! ”

 

 

“ 뭐 부적 ? ”

 

 

 

종국은 기분 나쁘다며 옷을 벗으려고 했으나 종민이 제 가슴팍을 툭툭 치며 말함.

 

 

 

“ 이것만 있으면.. 살거에요 ! 저도 하나 붙였어요! ”

 

 

 

잘 어울리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종민의 모습에 종국은 헛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일수밖에 없었음. 

 

 

 

“ 그래 .. ”

 

 

 

 

 

 

#

 

 

그러나 다음 전쟁에서 대패하는 종국. 지금까지 압도적인 무력으로 이겨왔던 종국의 부대는 이번만큼은 모든 작전을 꽤고 미리 준비를 해놓은 악마들에게 처참히 패배해버림. 퇴각 소리을 뜻하는 나팔소리가 들릴 때 종국의 가슴이 뜨겁게 달구듯 아파왔음. 날개를 접고 숲속에 숨은 종국은 나무를 부등켜 안고 숨을 쉬기 힘들어서 헐떡거리며 식은 땀을 흘림. 두렵고 답답함에 옷을 찢어 보는데 제 왼쪽 가슴에 종민이 준 부적이 뜨겁게 달구어지며 서서히 살에 흡수되고 있었음.

 

 

 

“ 그 새끼 .. 또 이용당해가지곤.. ”

 

 

 혀를 차는 종국은 쿨럭 입에서 피를 토함. 그리고 금세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짐.

 

 

곧 악마들에게 붙잡힌 그는 둘러쌓여 강간을 당하고 무릎꿇은 그의 눈앞에 놀란듯한 종민이 보임. 종국은 배신감이 들기도 전에 설마하는 절망과 함께 절대 아닐 거 라는 믿음이 있었음.

 

 

 

“ 야 ..... 바보 같은 놈 .... 부적 같은 거 잘 살폈어야지 임마... ”

 

 

 

한쪽눈을 뜨고 피식 웃는 종국은 가만히 종민의 입에서 무슨말이 나올지 기다렸음.

어쩌면 바보는 자신이었지. 그럼에도 마지막이 될 때까지 파랑새가 순수하게 남아줬으면 싶었으니까.

종민의 어벙한 웃음을 보니 마음 한켠 편안한 기분이 들었으나 그가 하는 말은 잠시 동안 이해할수없었음.

 

 

" 알고 있었어요 형. "

 

 

 

종민은 종국의 한쪽 날개를 과감없이 뜯어버림. 사슬로 묶여있는 종국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나서 의아하게 종민을 쳐다보았음. 피에 묻은 종국의 손이 동앗줄 마냥 종민의 발목을 잡고 있었음. 

 

 

" 아..니지 ...? " 

 

 

종민은 웃어보였다. 

 

마지막 남은 파랑새마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총명하게 빛나던 눈동자가 절망과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이 좋았다. 형은 여전히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라는듯 보였다. 

'☆☆단편 소설 > 간단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짧은 썰] 거울  (1) 2021.04.10
[지효종국]간단한 썰  (4) 2018.03.14
[광수종국]쉘님이 만화로 그려주심  (1) 2018.03.01
[광수종국]희어존 3부 맛보기  (2) 2017.10.29
[지효종국] 맛보기 R  (0) 2017.10.29
Posted by 타스tarkkj

2020. 8. 4. 15:54

[지효종국] 시든꽃(R)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블로그 이미지
bl 연성 블로그 . 취향 존중해주세요.
타스tarkkj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5.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