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4. 21:18 ☆☆단편 소설/단편소설
[김종국팬픽] 돌아서서 보면 (하)
다음날 일어났을 때 종국은 전혀 비몽사몽 하지 않았다. 말똥한 눈이 깜빡깜빡 천장을 바라보았고 이내 근육으로 다져진 몸을 일으켰다. 어젯밤, 신중히 더 고민 해볼만도 한데 만족스러운 결과에 이번에도 냅다 적어버리고 말았다. 아직 한 장이 남았으니까 여차하면 모두다 리셋할수 있다는 안전띠를 멘듯한 착각 때문이기도 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드라마에서 보던 부잣집 집이었다. 물질적인걸 바란건 아니었는데 ... 돈을 충분히 많았고 그저 그때 커리어가 끊기지 않았으면 했던 아쉬움 이었는데도 눈앞에 보이는 결과는 의미모를 두려움 속에서 웃음이 나게 했다. 옷장만 바뀌어버린 전 소원과는 달리 일단 아주 많이 바뀌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 아 ... 이런..”
침대에 앉아 두리번거리던 종국이 무언가 생각난 듯이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아침에 늘 하던 스트레칭도 까먹은 성급한 몸놀림이었다. 탁 트인 호화로운 공간에는 광수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탁자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대형 스크린과 초고층의 뷰 좋은 시니컬한 인테리어에는 어울리지 않을 나무탁자이긴 했으나, 그 탁자 안에 분명 만년필 케이스를 넣어두었었다. 연이어 비슷한 책상과 서랍 곳곳을 전부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아무것도 안 입은 무릎이 그대로 바닥에 닿자 종국은 자신의 모습을 창문에 비쳐보았다.
그는 이번에는 호텔 가운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운명이 바뀌어서 또 성격이 바뀌기라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저번 옷은 멋지기라도 했지. 집에서 호텔가운을 입는 남자가 나라니 상상한적도 없기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그래도 뒤늦게 조식이 들어왔을 때에 종국은 이곳이 집이 아니라 월세를 받고 빌려주는 호텔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뭐야. 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없네. ”
종이를 찾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없어진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하던 소파나 인형등. 마치 전혀 다른 공간의 존재가 된 듯이 눈에 익은 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엇지만 물건에도 정을 가지던 종국이 보기엔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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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슬개같은 마이크와 회전하는 카메라가 하늘높이 고개를 드는 런닝맨 촬영현장.
종국이 없는 6명의 멤버들이 한명씩 잘 꾸며진 소극장에 들어선다. 와 진짜 예쁘다. 누구 콘서트야? 게스트야? 소민이는 또 무슨 정보를 듣고 이렇게 꾸미고 왔어? 말 많기로 소문난 멤버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빠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의자 위 바구니에 가득 담긴 응원봉을 하나씩 나눠주는 재석. 석진은 이게 어떻게 키는 거냐며 하하에게 물어봤다가 놀림을 당한다.
이윽고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서 피아노 반주가 들려올 때에야 주위는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듯이 조용해졌다. 관객석 앞에 모인 멤버들은 오늘따라 더 높아보이는 무대위를 올려다보았다.
‘ 참.. 오래 됐나봐. '
노래 반주 끝에 얇은 미성의 목소리가 벽을 타고 울렸다. 라이브가 실감이 나도록 노래는 계속 나오는데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들이 세어나갔다.
“ 종국이 아니야? ”
“ 와 대박. 런닝맨 미쳤다. ”
재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카메라를 바라보고 리액션을 하였고 세찬이 그걸 받아 추임새를 넣는다. 짧은 탄성을 뒤로하고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면서도 평소보다 더 격양된 목소리가 여전히 홀을 가득 채운다.
‘ 외로워할때도 늘 이별앓고서- 아파할때도 - 네 눈물 닦아줄 - ’
클라이막스가 다가오자 무대 바닥이 열리면서 주인공이 서서히 얼굴을 비췄다.
아마 자막으로는 영원한 한남자 따위의 멘트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잘 셋팅된 머리에 코트를 입은 남자는 누구나 인정하는 전설급의 가수였다.
“ 종국아! ” 재석이 소리치자 지효가 노래 좀 듣자며 찰싹 어깨를 때리는 장면이 한켠.
그렇게 한탬포 쉬고 다같이 한남자가 있어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멋드러지게 차려입은체 씨익- 웃는 종국은 가족처럼 가까웠지만 하루아침에 낯선이들이 된 멤버들을 한명씩 눈에 담았다. 두 손을 꼭 잡고 노래를 감상하는 지효와 소민이나 이상한 춤을 추는 세찬이와 하하. 그냥 열심히 야광봉을 흔드는 석진. 멤버들이 저렇게 대우해주는 걸보니 짜릿한 기분이기도하고 허전하기도 하고... 머릿속이 복잡한 탓에 목소리 끝이 조금 떨리는 것도 같았다. 물론 바이브레이션에 묻혀서 관객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종국은 알 수 밖에 없었다. 감정이 평상시 같지 않다는 것을.
“ 종국아! 나알지? 내가 얘 밥도 사주고 막 그랬는데. 진짜 ... 많이 컸다. ”
“ 형. 커도 너무 크지 않았어요? ”
" 아 저리가요! 형 저 동훈이에요! 형! 김종국 따라잡기 하던 동훈이라고요. ”
여운을 남기는 반주를 끝으로 관객들이 만족할 공연이 막을 내리자, 박수소리와 함께 누가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멤버들이 무대위로 올라왔다. 재석이 반갑게 그를 맞이하려했으나 미처 닿기도 전에 세찬이와 하하가 그를 뒤로 보내며 재빨리 악수를 청한다.
“ 아.. 어..그래..! 자식.. 동훈아. ”
종국은 어영부영 받아주며 말했다. 처음 보는 사람보다도 어색한 반응에 주변에선 웃음보가 터지고 재석이 동훈을 밀치며 들어왔다.
“ 야 이건 널 완전 잊은거다. ”
“ 아니라고! 나 진짜 팬이라고! 이번에 드라마도 잘 봤습니다 형님! ”
하하는 최근 종국이 출연한 드라마의 명장면을 따라하며 어필을 해본다. 종국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멤버들이 국민가수 급으로 성공한 가수 겸 대상까지 받아본 배우를 어떻게 대할지 예측은 쉽게 했었다. 그렇지만 이 분위기에 평상시 하던 것처럼 대하기도 이상하지 않은가. 애초에 존댓말을 해야할지 반말을 해야할지 조차 답을 내리지 못했다. 오기 전에는 분명 ‘ 멤버들은 어색하더라도 제가 더 잘 아니까 먼저 다다가고 친한 척 굴어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신을 어려워하는 얼굴들을 보니 그다지도 몸이 뻣뻣해질 수가 없었다.
“ 야 잘나가는 스타들오면 친한 척 좀 하지마. 너희들만 같이 방송했냐! 그게 언제적인데”
뒤따라 오는 석진이 한소리함에도 뒤를 돌아보는 재석은 부루퉁한 형을 제치고 두 여자출연자들에게 웃으면서 다가갔다. 이내 장난꾸러기 상을 가득 풍기며 입가에 주름이 질정도로 웃는 재석이 다소곳하게 눈치보는 지효와 소민이를 가리켜 보았다.
" 너희들은 왜 이렇게 수줍어해 갑자기. ”
“ 아니 ... 생각보다 잘생기셨어 풍기는 아우라가 남달라요. ”
“ 야. 너 때문에 나까지 덩달아 수줍잖아. 아.. 안녕하세요. ”
그래도 종국은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금의환향처럼 대해주는 멤버들을 보는 것은 분명 들뜰 일이니까. 또한 이 천방지축 여자들이 자신에게 이토록 수줍게 반응하는 것이 얼마나 재밌는 일인가. 당장에라도 놀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따라 나온 ‘아예 지효씨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 후에 무슨 말을 할지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던진 지효씨라는 말에 입맛이 조금 썼다.
같은 멤버도 아닌데 .. 다시.. 다시 쌓아갈 수 있을까 ... 자신이 이 상황에 조금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 그건 그렇고 예능 잘 안 나오시잖아요? ”
베테랑인 멤버들은 어느덧 흥분을 가라앉힌체 카메라에 잘 비출 수 있도록 줄지어서 서 있었다. 게스트를 바라보면서도 몸은 카메라 쪽을 향한다. 한편 재석의 질문에 종국은 다시금 종이 한 장으로 자신의 인생이 확 뒤바뀌었다는 걸 실감했다.
“ 아예... 그런가. 그렇죠. ”
“ 근데 홍보할 것도 없으신데 어쩐일로 오셨어요? ”
동훈이 우상을 보는 듯 반짝반짝한 눈으로 응시했다.
“ 야. 와주면 고마운거지 어쩐일로 왔다니. 넌 저리가 있어! ”
“ 와. 이 형은 왜 자꾸 친한 척이야. 내가 더 친했다니까! ”
다른 톱스타들처럼 체면 차리느라 말을 잘못할까봐 멤버들은 게스트가 말한 기회조차 주지않고 티키타카를 이어갔다. 물론 예능 경력이 전무하다 싶이 사라졌으나 그렇다고 기억이 사라진건 아니기에 종국이 끼어들 듯 말했다. 종알종알 오디오를 채우는 멤버들의 목소리에서 처음의 어색함도 잊을정도의 익숙함이 파고 들어왔나보다.
“ 아오 증말. 시끄러우니까 둘 다 맨 끝으로 가있어. ”
늘 있었던 서로간의 합의한 버럭을 가장한 약간의 장난질이었다. 그러나 10년만에 얼굴을 비치며 오늘 처음 온 게스트가 무턱대고 할 첫마디는 아니었다고 종국은 뒤미처 깨달았다.
약 3초정도의 정적 후 재석은 수습하려고 애를 썼다. ‘거 봐 친한거 맞잖아.’ 라는 말에는 자신감도 없었고 어색함만이 덕지덕지 묻어나와 한껏 올라갔던 종국의 어깨위로 얹어지듯 하였다. 종국의 어깨가 축 쳐지는 동시에 사람좋은 상냥한 웃음이 베어나왔다.
“ 농담이고요.. 제가 정말 애청자거든요. 다들 이렇게 하길래 한번 해봤는데 ..”
오늘따라 무대와 관객석의 거리가 더 멀게 느껴졌다. 멤버들과의 거리 또한 바로 앞에 있음에에도 다른 공간에 있는 것만 같았다.
“ 이야 방금 그게 연기였어요? ”
그제야 표정이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재석의 뒤로 소민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 저 진짜 화나신 줄 알았어요. ”
“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제가 먼저 출연하겠다고 연락했어요 .”
“ 헐 감동 .. ”
그 후로 의미없는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종국은 지금의 자신에 대해 기억이 툭툭 끊겨서 나타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답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바뀐 인생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도 강렬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들어가 본 나무위키에는 자신이 바꾸고 싶었던 것처럼 2003년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고 6개월간 공익을 갔다고 적혀있었다.
3사 대상을 탄 3집 앨범이 끝나고 직후에 4집 앨범활동을 계속했고 덕분에 홍보를 할 수 있었던 ‘편지’도 더 일찍 발매된 ‘어제보다 오늘더’와 후속곡으로 바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마저도 원래보다 좋은 성적을 낸 듯 보였다. 그리고 2008년에 나온 6집 음반이 처음 들어보는 노래들로 3곡이 또 대박이 터지는 바람에 거의 모든 설문조사에서 1위를 하는 국민가수 급으로 올라간 모양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바빠서 패밀리가 떴다에 들어가지 못한 종국은 대신 배우 쪽으로 도전하여 2010년 우수상을 탔다. 그 와중에도 운이 좋은건지 모험 같은 도전은 탄탄대로였고 이번 삶에는 배우와 가수로 두 분야의 대상자가 되어있었다. 될놈될이라던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화려해진 이력에 기분이 좋아야할텐데 마음이 길을 헤매는 방랑자처럼 심숭생숭한 이유는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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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고하셨습니다 ”
" 예 다들 오늘 고마웠어요. "
“ 얘들아 오늘 술 한잔 하자. ”
“ 어차피 석진이형은 마시지도 않으면서. ”
등뒤의 친근했던 멤버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듯이 회식까지 같이 참여하고 싶었으나 그럴수 없었다. 멤버들의 술한잔에는 게스트도 참여할만한 회식이 있고 그게 아닌 자기들끼리의 만남이 있었는데 후자에 가까워보였기 때문이다. 가끔씩 일면없는 게스트가 단지 술자리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친목모임에 끼려고할 때 불편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더 이상의 염치없는 자신은 사양이었다.
터벅터벅 주차장까지 그 짧은 길을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느리게 걸었다.
종국은 스스로 일중독을 염려하면서 자신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던 이유는 명예뒤의 인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20년을 살면서 느낀 바로, 철저하게 자기들끼리의 급이 나뉘고 철지난 스타는 알게 모르게 무시당하는 연예계는 인지도가 만들어내는 계급사회나 다름없었다. 권력이 무너지면 얕보이게 되는 건 한순간이다. 하루아침에 친했던 이들이 등을 돌리기도 한다. 그는 그것이 두려웠다. 종국은 누구보다 사람을 무서워하며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을 좋아하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떨어지면 안 되는 것이다. 흠집이 나면 안된다. 누구보다 열심히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해야 했다.
“ 이거 참나. 왕이 된 기분이군. ”
런닝맨 촬영을 마친 종국은 한숨을 푹 쉬면서 머리를 툴툴 털었다. 촬영 하루종일 어찌나 떠받들어주던지 제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럼에도 뭐가 그렇게 심기를 거스르는지 지나가다 신발에 걸리는 작은 돌멩이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려본다. 혼자서 가는 퇴근길은 적적했다. 바뀐 미래에는 갑진이도 곁에 없어서 일부러 얼굴 모르는 매니저는 오늘 쉬라고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실제로 그는 원래도 대단한 커리어였으나 이번생(?)은 가수로 연예인으로 믿기 힘들 정도의 업적을 남겼다. 결은 달랐으나 겸손함이 미덕인 종국이 생각해도 서태지나 조용필 선생님과 견주어도 될 정도였다. (실제로 그런 전설들과 같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혀를 내두르는 그런 위치에 눈 깜짝할 세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데 왜 그 결과가 허무함인지 모를 일이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나무와 건물들 사이로 차를 몰면서도 아까전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멤돌았다.
그중 쉬는 시간 멤버들끼리 나누는 사담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듣다가 신나게 끼어들었던 장면이 한컷있었다.
- 어? 어떻게 아셨어요?
- 아.. 그게 런닝맨에서 봤나?..
- 방송에서 우리가 그런 말도 했었어?
머쓱하게 말하던 종국은 아까 전에도 같은 상황에 같은 변명을 한 것을 떠올린 탓에 말끝을 흐렸다. 하루반나절 같이 놀다가 전화번호를 따고 다시 친해지면 되려니하고 쉽게 생각했으나 본래 낯가림이 심한 성격탓인지 꼬인 인연탓인지 쉽지 않았다. 이내 멤버들끼리 다시 즐겁게 떠드는 상황에 종국은 입술을 짓씹었다.
- 내가 좀 알면 안되냐.
소심하게 뱉어낸 한마디는 단순한 혼잣말이었으나 바로 옆자리에 있던 지효만이 들은 듯이 힐끗 종국을 쳐다보았다. 양반다리를 한 체 제 무릎을 꽉 잡고있던 종국은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을 느끼고는 괜히 고개를 숙였었다.
본래 같으면 남녀간의 거리도 없는냥 자신의 어깨에 붙어올 지효였으나 둘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듯 하였다. 지효또한 자신만큼 낯을 가리는 성격이니까.
말도 안되는 심술이었지만 그냥 조금 서운했다. 당연한 반응인 것을 머리는 이해하는데도 지금 자신이 얼마나 이상해보일지 아는데도 아까부터 밀어내는 듯한 행동들에 서운한건 서운한 거 였다. 결국 종국은 가만히 일어나서 자리를 피했었다.
“뭐 어차피 직장 동료들인데 뭘 ... 그렇게 까지 소중했냐고 ..”
오늘따라 어디가 잘못된건지 차에서 나는 삑삑 소리를 들으며 집에 가는 길.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같이 울고 웃었던 기억들이 도장찍힌 듯이 머릿속을 채웠다. 세상에서 지워진 기억들이 자신에게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헤어지면 더 이상 얼굴한번 보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련이 남았던 것이다. 저 혼자 다시 친해지려고 바둥거렸던 상황에 자신은 안중에도 없던 멤버들에게, 제가 없어도 웃고 즐기는 멤버들에게 짜증이 났었다.
“ 아.. 증말.. 왜 또 여기로 왔지 .. .”
머릿속에서 엉켜진 실타레를 풀면서 길을 따라오다보니 종국은 어느세 자신의 집에 가까이 와버렸다. 이렇게 화려해도 되나 싶었던 호텔이 아니라 한 달 전에 살던 제가 가진 부에 비해 검소했던 그 아파트였다.
넉넉한 갓길에 주차를 한뒤 종국은 눈에 익은 풍경을 조용히 눈에 담았다. 그리고 쌀쌀맞도록 찬 바람이 제몸을 가득 안기도 전에 도망가는 것을 느끼며 조금 걸었다. 두 손을 꼭 잡고있는 연인들도 삼삼오오 모여다니는 사람들도 피해서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벤치에 앉아본다. 근처 축구장에서 동네 조기축구회원들이 경기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종국은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전화번호부에는 모르는 이름들이 가득했고, 있어야 이름들은 빠져있었다. 기억에 없는 인연은 모양만 맛있어보이는 속은 빈 과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흠칫. 빠르게 넘기던 목록이 어느 이름 하나에 멈춰섰다. 마스크에 막혀 다시 먹히는 한숨을 푹 내쉰 종국은 전화를 걸고 가만히 기다렸다.
-어... 종국...이니?
“ 모해? ”
- 나? 어... 집에서 애들보지. 근데 네가 무슨 일로 전화를 다했냐.
“ 야 차태발. 오랜만에 술 한잔 할래? ”
- 나랑..?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커다란 뱀 한마리가 등을 쓸어 목을 감싸는 것 같은 두려운 기시감으로 느껴졌다.
“ 아 ... ”
그때 태현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싸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스쳐지나갔다. 무슨 일 때문에 싸웠는지 조차 기억이 안 나는데 20대 초반부터 의지해왔던 절친과의 관계가 단절되어있음은 알 수 있었다. 항상 허허실실한 태현이가 그토록 정색하며 배려없는 너한테 질린다고 말하는 기억은 처음보는 장면이었기에 종국은 잠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심장이 쿵쿵쿵 큰소리를 내며 뛰는 게 느껴졌다.
“ 아... 미안하다... ”
잊고 있었다고 하기엔 그 또한 무례했기에 종국이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종국은 답이 없는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끊지는 못했다. 생각이 많은 것은 태현도 마찬가지인 듯 잠시동안 짧은 추임새만 들렸다.
“ 어.. 저기 종국아 너랑은.... ”
종국은 왠지 울컥해지는 마음에 태현의 뒷말을 끊었다. 철벽치고 차가운 말은 더 이상 듣고싶지 않았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쌀쌀맞은 태도를 한번에 몰아받기에 오늘 이만하면 충분했다. 위로받고 싶고 안도하고 싶어서 건 전화에서 상처를 받는 것이 더더욱 서러웠다. 이 남자에게 인연이란 그토록 소중한 것이었고 ... 태현은 그중에서도 가장 믿었던 친구였다.
“ 아니야... 끊을게. ”
오늘 하루종일 폭포처럼 물밀 듯이 밀려오는 환희의 감정이 가슴속을 전혀 채우지 못하고 커다란 구멍안으로 쏟아져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분명 그가 바라는 만큼 성공했는데 ... 그 재석이형이 인정할정도로 성공했는데도 ...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그를 무시하고 등질 사람이 없음에도... 겨우 몇 주 살아본 인생이 외롭기 그지없었다.
“ 잠깐만! 야 종국아 무슨 일 있었어..? ”
한편 체감상 10년만에 연락이 온 절친했던 친구가 절교한 것도 잊고 갑자기 술을 마시자고 한 것도 모자라 흐극거리며 울음을 참는 목소리까지 들리니 태현은 덜컥 걱정이 먼저 들어섰다. 그러나 종국의 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눈가에 눈물만 주렁주렁 달려 똑똑 하나씩 떨어져내렸다. 종국이 겉보기엔 강해보여도 마음여린 구석이 많다는걸 태현만큼 잘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끊겠다는 놈이 아무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울고만 있으니 태현은 답답함에 먼저 용기를 내었다.
“ 야! 나... 사실 계속 후회했어! 너한테 그렇게 말해놓고 나도.. 네가 너무 편해서 배려가 없었으니까. 계속.. 계속 마음한 구석에 걸리는거야. ”
태현에게 노래라도 불러줄때처럼 상체가 점점 낮아지는 종국은 그만히 듣고만있었다.
“ 사실은 나혼자 자격지심에 ...별 것도 아닌일에 민감하게 군걸지도 몰라.
원래도 네가 ... 처음 만났을 때부터 터보로 스타였고. 늘 뭐든지 잘하던 네가 사실 부럽기도 했어. 그래도 분명 고생하던 네가 잘 된게 너무 좋았다. 대상탔을때는 진짜 .. 내친구가.. 우리종국이가 이렇게 노래잘한다고 내가 막 자랑하고 다니고 했잖아.
그런데... 나는 힘들 때인데 너는 배우로도 나보다 잘나가버리니까.. 그때는... 종국이 네가 멀게 느껴지더라. 그게 어쩔수없이 그렇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진짜 벌 것 아니었잖아 그치. 괜히 민감하게 대응하고 말더라고.... 그래서 내가 말이야... 미안해 친구야...”
"아니야 임마... 그... 미안은 무슨...내가 미안하지. "
태현은 서로 진지해진것이 닭살스러운건지, 당황해서 주절주절 한 것이 뒤늦게 부끄러운건지 종이 뒤집듯이 밝은 목소리로 얘기한다.
“ 오늘은 내가 바빠서 못 만나는데... 내일 어때? 술마시면서 다~ 풀자 우리. ”
다만 밝게 가장한 목소리 안에 본인도 먹먹해진듯 막힌 목소리가 세어나왔다.
“ 그러니까 뚝해. 그만 울어.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왜 갑자기 울고 그래... ”
응... 종국은 겨우내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어떤 것도 부족함이 없던 삶이었던 것 같다. 인기도 명예도 부족한적이 없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있던 행복한 삶이라고 여러번 되뇌었음에도 작은 호기심에 욕심을 동반했던 것같다. 이자리가 제자리가 아닌듯이 외로움이 병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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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종국은 호텔로 가지 않고 친가에 들렸다. 모든 게 변했어도 이곳은 변함이 없었다. 늘 같은 자리의 같은 물건. 조금 낡은 가전기구들과 벽지에서 익숙한 내음이 포근하게 올라왔다. 짧게 파마하신 웃는 상의 어머니가 현관부터 그를 반겼고 늘 무뚝뚝한 얼굴의 아버지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다.
덩치큰 몸이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뒤뚱뒤뚱 걸어와 저보다 얼굴하나는 작은 키의 어머니를 부둥켜 안았다. 살며시 안던 평소와 달리 머리를 비빌정도로 가득 안아오는 다 큰 아들의 품에 어머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얘가 갑자기 왜이래 ”
“ 아니 오랜만에 보니까 좋아서 그르지 ”
밖에 오래있었던 듯이 덩치만 커진 아들의 품에서 차가운 공기가 묵직하게 퍼져 어머니의 세월이 담긴 피부에 스며들었다.
“ 어무니.. ”
“ 왜? ”
“ 어무니는 내가 ... 아니에요 ”
" 왜 말을 하다가 말어 ? 밥은 먹었니? "
제가 백수일때도 누구보다도 잘 나갈 때도 당신은 오롯이 그곳에 있어주는 구나. 종국은 윗옷을 벗으며 찬기운까지 벗어내었다. 집에 온다고한지 30분도 채 안되었는데 벌써 대펴진 방에 들어선다. 문지방을 넘는 종국의 시야에 낡은 갈색 소파가 보였다. 이또한 매일 봐왔던 자신의 방. 왠지 모르게 긴 꿈에서 깬 것 같았다 ...
“ ... 돌아왔습니다 ”
소복히 먼지가 쌓인 소파의 한구석에 어느 만년필 케이스가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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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이가 워낙 욕심이 없는 인물이라 이런이야기는 케붕인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2006년부터 팬이 되었던 내가 제일 아쉬워서 쓴건데 막상쓰다보니
그 치고올라가던 전성기 때 위기를 얻고도 지금까지 잘해내는 꾹이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ㅋㅋ
여러모로 지금의 꾹이에 더 만족하게 됨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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